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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뷰-손봉호] 기독교는 무식한 종교가 아니다

성경 해석은 지식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자기반성·비판이 지식추구자의 올바른 태도

[월드뷰-손봉호] 기독교는 무식한 종교가 아니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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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까지만 해도 한국 교계에서 신학자의 위상은 매우 높았다. 박형룡 박윤선 한철하 등 뛰어난 신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신학자들은 교수란 사실만으로 존경받았다. 신학자의 수도 적어 희소가치도 높았다. 교단의 중요한 결정에서 신학자들의 의견이 결정적이었고, 중요한 집회나 큰 교회가 신학교수를 강사로 모시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신학교수가 목회자가 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신학교수들의 운명은 교단 정치가들이 결정하고 이단이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데도 신학자들의 의견은 묻지 않는다. 큰 교회 목사로 차출되는 것이 오히려 유능한 신학자의 표지가 되고 말았다. 한국교회의 신학은 신학자들이 아니라 교단 정치가들이 좌지우지한다.

‘꿩 잡는 것이 매’고 한국교회의 꿩은 많은 숫자의 교인과 많은 액수의 헌금이다. 그런데 많은 지식과 심오한 이론은 그런 꿩을 잡는 데 별로 효과적이 아니므로 홀대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신학자가 과잉 상태이다보니 신학자의 가치가 떨어지고 신학의 가치도 덩달아 떨어지고 있다.

신학의 저평가는 모든 지식, 이론, 지성으로 연장되었다. 교회에서 지식인들의 위치는 헌금 많이 하는 기업인들이나 인기 연예인들에 한참 못 미친다. 지금 한국교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반(反)지식적, 반지성적이다. 여기에는 지식인들 자신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 만사에 냉소적이거나 철저히 이원론적이 되어 자신들의 전문지식은 신앙과 전혀 무관하게 취급한다. 신앙과 교회에 효과적인 비판도 하지 못하고 크게 공헌하지도 않는다.

지식의 저평가는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바울 사도는 헬라인이 찾는 지혜는 십자가의 도(道)보다 어리석은 것이며(고전 1:22-25), 당대의 학문을 대변한 철학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속임수나 다름없다고 봤다(골 2:8). 2세기 때 교부 터툴리아누스는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믿는다” 하고 “(철학의 도시) 아테네와 (믿음의 도시)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물음으로 믿음의 세계에는 지식이 설 자리가 없다고 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알기 위해서 믿어라”고, 안셀무스도 “알기 위해서 믿는다”고 했다. 모두 믿음이 지식에 우선하고 믿음이 있어야 올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지 지식의 종교가 아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주장을 펼친 바울 터툴리아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안셀무스 모두 당대에 뛰어난 지식인이었다는 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안셀무스는 기독교 신학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철학에서도 중요하게 취급되고 칼뱅은 23살 때 쓴 세네카의 관용론 주석에서 라틴 저자만 해도 55명을 인용했다 한다. 그들 외에도 기독교는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 카이퍼, 바르트, 틸리히, 니버, 도여베르트, 루이스 등 위대한 신학자들과 지식인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만약 그들이 없었더라면 그 후 역사에서 과연 기독교가 누렸던 위상을 가질 수 있었으며 심지어 믿음과 지식의 관계에 대해서 바로 알 수 있었을까. 거대한 세속 문화의 흐름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짐승과 달리 인간의 삶은 좋든 나쁘든 지식에 의하여 영위되었고, 현대인의 삶은 거의 대부분 지식이 결정한다. 현대사회는 ‘지식기반 사회’가 되었고, 이런 지식의 형성과 축적에는 기독교가 크게 공헌했다. 삶의 방식, 삶의 목적, 가치판단, 세계관, 심지어 지식까지 인간이 개발하고 축적한 지식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성경 이해, 신앙생활, 교회사역도 예외가 아니다. 성경 자체는 인간 지식에 의하여 결정되거나 영향을 받지 않지만 성경 해석과 구체적인 적용은 지식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지식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지식 추구에 필요한 태도다. 모든 거짓, 편견, 편애, 욕망, 감정, 부분적인 것, 일방적인 것, 비논리적이고 불합리적인 것을 배제하고 오직 사실 자체만을 정확하고 바로 알려하는 노력은 학문하는 자의 기본자세다. 거기에는 반드시 끊임없는 비판과 철저한 자기반성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어떤 진리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런 태도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학자가 될 수 없고 지성인이라 할 수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만신창이의 처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 모든 고등종교 가운데 가장 불신을 받고 있고 세상의 조롱과 조소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자란 반지식적·반지성적인 경향이다. 신학도 지식도 다 무시하고 감정의 흥분을 성령의 감동으로 미화하여 꿩을 잘 잡는 매들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사실 외에는 모든 것을 넓고 깊은 지식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더 학문연구자의 태도로 접근했더라면 이런 시궁창에 빠져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는 지식의 종교는 아니지만 무식한 종교는 결코 아니다.

□ 이 칼럼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와 함께 합니다.

손봉호 ‘월드뷰’ 대표주간 고신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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