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쭈그려 앉은 예수 기사의 사진
축구공을 뻥 차면 바다로 빠졌다. 섬은 창경궁 반 크기였었다. 우리는 그 섬 분교에서 그해 여름 교회 대학부 수련회를 가졌다. 전북 군산 앞바다 야미도라는 섬이었다. 그 야미도는 지금 새만금 개발로 육지가 됐다.

밤바다. 파도 소리에 사그락거리는 잔돌이 ‘한여름 밤의 꿈’ 같았다. 저녁 기도 모임이 끝나고 혼자서 그 밤바다로 나섰다.

여인은 밤바다 모래사장 마른 잔돌에 앉아 담배 한 대를 깊게 빨아들였다. 생머리에 청바지를 입은 대학부 선배였다. 약학대생이었다. 새내기였던 나는 여대생이 담배 피우는 것을 처음 제대로 본 순간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쭈뼛쭈뼛 그녀 옆에 다가가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맛있어요?”

교회 자매가 담배를 피운다는 건 상상치 못할 충격이었다. 1981년이었다. 여자가 담배 피우면 성질 급한 못된 남자들이 재떨이를 던졌다는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하던 시절이었다.

여인은 고개를 반쯤 돌려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고민이 많아서 그래. 마음이 편안해지거든. 예수도 고민이 많으면 쭈그려 앉아 낙서도 하고 그러잖아.”

흡연 교회자매의 신앙상담

그날 이후 ‘담배 피우던 여인’의 아우라(aura)는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 성과 속이 뒤엉켜 몽정하는 소년이 된 느낌이었다.

그해 10월쯤이 아니었나 싶다. 버스에 앉아 창경궁 앞을 지나는데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왔다. 모 대학 약대생이 대학 옥상에 올라가 반독재 구호를 외치고 유인물을 뿌리다 학내 사복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이었다. 그 여대생은 담배를 깊게 빨던 여인이었다. 두 번째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2013년 여름. 밤바다 여인을 다시 만났다. 대학부 ‘홈커밍데이’ 형식의 모임에서였다. 긴 생머리 여인은 파마머리로 변했다. 뭐 세 번째 충격이었으나 표정에 드러내면 안됐다. 선배는 평생 학교 상담교사로 살았다고 했다. 그에게 ‘쭈그려 앉은 예수’는 여전히 상담자였다. 상담교사도 상담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선배는 당시 새내기 후배와의 장면을 기억도 못했다. 다만 “나는 그때 쭈그려 앉아 손으로 땅에 뭔가를 쓰는(요 8:8) 예수를 좋아했어”라고 말했다.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데 여전히 멋져 보였다. 그 선배는 지금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 같다. 왜 피우지 않느냐고 굳이 묻지 않았다.

30여년 전 대학부 사람들은 홈커밍데이를 계기로 다시 모인다. 목사 된 이도 있고 장로 된 이도 있다. 다들 제 분야에서 신앙인으로 제 몫을 하며 살아왔다. 그 우리들은 ‘담배 피우던 여인’이 그러했듯 뭔가에 하나씩은 중독돼 지금도 자신과 싸우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중독증세를 가진 이들을 무조건 도덕적으로만 해결하려 든다.

경청, 중독증세를 치유하다

우리는 이후 성경공부와 치유를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서로의 얘기를 잘 듣기로 했다. 모임 ‘경청’이다. 두 달에 한 번 주일 오후에 만나 선정된 한 사람의 얘기를 30분간 듣는다. 80년대의 대학부 모임 때처럼 비판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궁금증만을 질문 받는다. 그리고 중보기도로 마무리한다. 우린 지금도 하나님의 치유가 필요하다.

다음 모임 30분은 그 ‘선배’ 차례다. 담배 피우냐고 질문해야겠다.

전정희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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