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 주민들은 ‘2003년의 악몽’을 지우려 애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건물 담벼락에 빼곡히 적혀 있던 ‘방폐장 반대’ 구호는 새 페인트로 덧칠됐고, 곳곳에 내걸렸던 핵반대 깃발도 사라졌다. 군청 주변에 있던 핵반대 대장군, 핵반대 여장군 역시 철거된 지 오래다. 인근 편의점 주인은 기자가 2003년의 기억을 들추려 하자 “떠올리기도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지난 16일 찾은 부안군청 인근 국민은행 옆에는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핵 없는 세상, 생명·평화의 부안’이라고 적혀 있다. 마을 주민은 비석 아래 타임캡슐이 묻혀 있다고 했다. 부안 사태 일지, 동영상 테이프, 관련 사진 등 2003년의 기억은 여기에 다 담겨 있다.

당시 부안의 작은 섬 위도는 위기였다. 새만금방조제 건설 이후 조류가 변했고, 인근 영광원전에서 온배수가 흘러나오는 바람에 어획량이 급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방폐장 유치 지역에 각종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하자 위도 주민들은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위도 주민 1700여명 중 90% 이상이 방폐장 유치에 찬성했다. 그해 7월 부안군은 위도 방폐장 유치를 선언했다.

그러나 내륙에 있는 주민들이 반대했다. 그들은 대부분 농·어업 중심으로 먹고살았는데 방폐장이 들어서면 농수산물 판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부안군은 군 의회 동의도 구하지 않는 등 주민 설득을 소홀히 했다. 여기에 환경·반핵 단체들이 나서 주민들의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주민들은 손에 화염병을 쥔 채 고속도로를 점거했고 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했다. 이들은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를 감금하고 폭행하기도 했다. 이후 주민들은 방폐장 건설에 대한 주민투표를 치렀고 전체 군민 5만2108명 중 91.8%가 반대표를 던졌다. 정부가 압도적인 반대 여론을 확인한 뒤 부안의 방폐장 건설을 철회한 뒤에야 사태는 수그러들었다.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당시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당시 방폐장 백지화 대책위원장이었던 김종성(48)씨는 “2003년 이후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지만 속에 있는 앙금까지 가시진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부안의 지역경제 사정이 나아지지 않으면서 방폐장 유치를 반대했던 이들에 대한 원망도 커졌다. 위도 주민인 김진상(48)씨는 “방폐장이 들어섰다면 우리도 울산만큼 잘살 수 있었을 것”이라며 “당시엔 알지도 못하는 내륙 사람들이 무조건 반대하면서 찬성하는 사람들을 매국노 취급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군청 주변에서 음식점을 하는 A씨는 “방폐장 유치 실패 이후 부안 경제는 멈춰 있다”며 “정부에 밉보여서 그런지 지원도 없고 살림살이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6·4지방선거에서는 2003년 당시 방폐장 유치를 주도했던 김종규 군수가 다시 당선됐다. 당시 방폐장 유치에 반대하며 김 군수를 감금하고 폭행했던 사람들이 김 군수를 다시 군수로 선택한 것은 아이러니다. 이 아이러니 속에 당시 부안 사태의 본질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부안=임지훈 기자 zeitgeis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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