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 우리에게 무엇인가-르포] 29년 걸린 방폐장… 주민들 “믿는다” 기사의 사진
경북 경주시 양북면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에서 지난 19일 처분 과정 시연이 이뤄졌다. ‘방사성 물질’ 표기를 부착한 트럭이 사일로(Silo)에서 폐기물을 바르게 쌓는 작업을 위해 멈춰서 있다. 올 상반기부터 아파트 20층 높이의 저장고인 사일로 총 6개에서 폐기물이 본격 처분된다. 경주=김지훈 기자
지난 19일 경북 경주시 양북면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방폐장) 인수저장건물 앞. 방사성 폐기물 드럼통을 가득 실은 푸른색 트럭이 등장하자 긴장감이 흘렀다. 드럼통을 실은 트럭은 천천히 깊이 80m 길이 1.4㎞의 지하 처분고로 향했다.

방폐장 건립 논의가 시작된 지 29년 만의 일이다. 1986년부터 방폐장 대상 부지를 찾기 시작해 ‘부안 사태’ 등을 거쳐 9차례 후보지를 옮긴 끝에 마침내 건립된 경주 방폐장이다.

올 상반기 본격 가동을 앞두고 경주 방폐장 매립 과정 시연이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주민들은 안전성을 믿고 집터를 내준 만큼 방폐장이 안전하게 가동되고, 지역 경기가 활성화되길 기대했다. 양북면 주민 김모(71·여)씨는 2009년 집과 부모님 묘지, 일구던 밭을 모두 이 시설 건립을 위해 내줬다고 했다. 만족할 만큼의 보상은 아니었지만 김씨를 비롯한 양북면 주민들은 ‘방폐장 건립 반대’를 위한 단체 행동은 하지 않았다. 김씨는 “주민설명회가 자주 열려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안전하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정부가 하는 일이니까 안전하다고 믿고 내줬지…”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반응에는 ‘이왕 시작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많았다. 시설 유치 단계에서 고민이 많았지만 이제 가동만을 앞둔 상황인 만큼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방폐장 인근 식당에서 일하는 A씨(60·여)는 “바닷가를 찾은 손님들이 ‘방폐장이 있는데 이곳 생선을 어떻게 먹느냐’며 발길을 돌릴 때는 적극적으로 반대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왕 시작한 것이니까 우리가 믿게끔 안전하게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주환경운동연합 정현걸 상임의장은 “어차피 방폐장 운영 허가가 났기 때문에 앞으로는 안전하게 운영되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이 과제”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주민투표 89.5%의 높은 찬성을 얻는 등 민주적 절차로 진행된 경주 방폐장을 모범적 사례로 꼽지만 ‘29년’의 세월이 말해주듯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갈등의 역사 속에는 2003년 ‘부안 사태’가 있다. 당시 정부는 방폐장 부지로 전북 부안군 위도를 선정했고 주민들은 극렬히 저항했다. 정부의 일방통행식 결정은 최악의 갈등·폭력 사태로 비화됐다. 방폐장 유치에 앞장섰던 당시 김종규 부안군수는 주민들에게 감금돼 폭행당하기도 했다. 인구 6만명의 부안군에는 주민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 8000여명이 상주했고, 주민 160여명이 사법처리됐다. 결국 주민 반대로 정부는 이곳 방폐장 건설을 포기했다.

지난 16일 찾은 부안에는 당시 찬반으로 갈라섰던 주민들 간 앙금이 아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다수 주민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경주 방폐장이 부안의 아픔을 딛고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지만 중·저준위 방폐장보다 위험 부담이 훨씬 큰 사용후 핵연료 처리장 건립 문제가 눈앞에 닥쳐 있다. 우려를 신뢰로 바꾸고, 갈등을 합리적 합의로 이끌어내기 위한 논의는 이제부터다.

경주=김유나 기자, 부안=임지훈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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