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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손수호] 우리 동네 성산동 이야기

[청사초롱-손수호] 우리 동네 성산동 이야기 기사의 사진
언론사 기자들은 서울의 서북쪽에 많이 산다. 회사가 광화문과 여의도 쪽에 몰려 있기에 직주(職住) 근접이 유리하다는 이유로 서대문, 마포, 은평 지역에 몰려 있어 더러 ‘서북파’로 불린다. 강남으로 힘이 쏠렸는데도 청와대나 국회가 있는 곳이 서울의 중심이라고 착각한 결과이기도 하다.

나도 은평구의 언덕 위에 15년간 살다가 평지에 자리한 마포구 성산동으로 내려왔다. 기대했던 대로 생활 여건이 나아졌다. 무엇보다 큰 눈이 와도 걱정이 없다. 지하철역도 가깝고, 버스 또한 여기저기서 어찌 그리 자주 오가는지.

내친김에 자랑을 보태자면 공원이 많다. 코앞의 평화의 공원에 가면 넓은 숲에 개울물이 흐른다. 비 오는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에서는 맹꽁이가 운다. 다리 건너 월드컵경기장에선 봄여름가을 젊음의 물결이 춤을 추고, 주말에 경기장 밑 CGV에서 심야영화를 관람해도 귀가 걱정이 없다. 그뿐인가. 걸어서 10분이면 한강에 닿는다. 여름철 강물이 바라보이는 난지공원에 돗자리 깔고 누우면 더할 나위 없다.

이 정도면 핀잔이 나올 때도 됐다. 뭐 자랑할 게 없어 동네 자랑이냐고. “도회생활이란 게 시골처럼 농토에 묶인 것도 아니고, 이런 저런 사정이 생기면 이사하는 게 다반사 아니냐” “당신이 말하는 그 정도 편의시설은 웬만한 곳에 다 있다”는 지적도 맞다.

동네는 공존의 지혜 가르치는 교육현장

그래도 굳이 동네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람 사는 곳의 조건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덧붙이자면 우리 동네에 노인요양센터가 있다. ‘혐오시설’이라며 현수막 걸고 반대하는 곳이다. 여기에는 데이케어센터라는 부대시설이 있는데, 매일 아침 출근길에 이곳을 찾는 검버섯 얼굴의 노인들을 마주친다. 어쩌다 조찬이라도 있어 새벽 6시경에 나서면 요양센터의 불이 환히 켜져 있다. 길을 건너면 교회를 사이에 두고 임대아파트와 장애인복지관, 종합사회복지관이 나란히 있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들도 공동체의 일원인 만큼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휠체어 타는 사람이 많고, 심지어 횡단보도에서 교통 정리하는 아저씨도 휠체어를 타고 있다.

아파트 뒤쪽에는 특수학교가 있다. 지체나 심신이 불편한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다. 바로 옆에는 일반 초등학교 아이들과 등하굣길에 만나지만 서로 거리낌이 없다. 주민들은 특수학교 내의 수영장에서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부유층 불행은 삶의 그림자 외면하기 때문

자, 어떤가. 일부 이웃들은 이런 환경을 대놓고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지만 나는 이런 곳이 윤리적 주거의 조건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아파트 단지와 이웃해 사회적 약자가 살고, 일반학교 옆에 특수학교가 자리하고, 체육관이 있으면 요양시설도 있는 게 자연스럽다.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은 동행하고 수시로 임무를 교대하는 것이니까.

지난달 강남지역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해 사건은 이런 건강한 생태계를 일상에서 겪지 못해 생긴 비극이라고 본다. 40평 아파트, 외제차, 4억여원의 예금을 두고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세상의 빛만 보고 그림자를 외면한 결과다. 길에서 수시로 장애인을 만나고, 복지 대상자의 어려움을 경험했다면 심성이 그토록 마모되지 않았을 것이다.

무릇 동네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옛날 시골이 그랬다. 남녀노소, 부자와 빈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각자의 고유한 모습으로 어울렸다. 구성원들은 그곳에서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지, 공존의 원리를 터득했다. 내가 쑥스럽게 동네 이야기를 꺼낸 연유도 그렇다. 행복과 불행의 담장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가치가 부동산 시세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이 나올 법하다. 그 정도 자랑했으면 성산동에서 평생 살 거냐고. 고민이 있긴 하다. 동네는 좋은데, 집이 문제다. 네 식구가 하나뿐인 화장실을 놓고 벌이는 아침 전쟁이 가관이다. 그러니 행여 나중에 이사하더라도 오해 말기 바란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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