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종걸] 사회지표 개선이 먼저다 기사의 사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성과도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행복은 일자리, 환경, 건강, 평등, 사회적 연계 등 각종 사회지표 속에 나타난다. 만약 경제성장이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국민행복에 복무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그러하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만큼 경제지표와 사회지표가 괴리되어 있는 나라도 드물다. 경제는 성장하나 국민은 행복하지 않고 생활은 더욱 불안해진다. 경제만 보면 우리는 이미 선진국이다. 구매력평가(PPP)로 계산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11달러로 OECD 34개국 중 22위에 위치한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과 2000∼4000달러 격차에 불과하다. 세계 8대 무역대국이며, IT 강국이자 자동차 생산 5위의 제조업 대국이다. 소득 수준, 교육, 기대수명을 지수화한 인간개발지수(HDI)는 세계 12위로 최상위권이다. 그런데도 행복할 것 같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일단 노동이 너무 불안하다.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은 두 번째로 길며 저임금 노동 비율 또한 그렇다. 비정규직 비율은 네 번째로 높으며 노동조합 조직률도 네 번째로 낮다. OECD라고 선진국만 모여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멕시코 칠레 체코 헝가리 터키 등 중진국도 수두룩하다. 일반적으로 국민행복은 평등에 기반하고 있으나 우리의 빈부격차는 행복에 반한다. 상대적 빈곤율은 일곱 번째로 높으며, 빈곤층의 빈곤선 이하 부족분의 크기를 나타내는 빈곤 갭은 세 번째로 크다. 장래가 불안하니 출산율은 당연히 꼴찌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자살률 또한 압도적 1등이다. 우리와 2등(헝가리)의 격차는 2등과 13등(미국)의 격차와 같을 정도로 창피할 수준이다.

사회는 불안한데 정부가 나서서 복지로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애초부터 쓸 돈이 별로 없다. 조세부담률과 공적 사회지출 수준은 각각 꼴찌에서 네 번째와 두 번째다. 제도경쟁력도 최하위 수준이다. 세계경쟁력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26위(총 144개국)이나 정부 정책은 불투명하고(133위), 기업 내부의 견제 장치는 약하다(126위). 은행 문턱은 턱없이 높으며(120위), 은행의 건전성은 최악이다(122위).

정부는 경제 혁신과 제도 개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올해 각 경제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 내용을 보면 그렇다. 정말 경제 혁신과 제도 개혁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필자는 이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비정규직 고용계약 4년으로 연장, 정규직 해고조건 명시화, 능력주의 임금체계 개편 등과 같은 노동 개혁은 정규직의 지위 약화와 비정규직의 고착화만을 가속시킬 것이라는 생각이 많다. 정부에서는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겠다고 말한다. 소위 유연안정성 확보다. 그러나 무슨 돈으로 하려는가. 사회 안전망 확충과 ‘증세 없는 복지’란 필자에게는 네모난 동그라미, 하얀 까만색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수도권 규제 완화, 한강 주변 개발, 의료 영리 자회사 영업 확대 등도 수도권 집중과 환경파괴, 의료 공공성 저해 등과 같은 여러 우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창조경제밸리, 벤처창업 육성, 중소·중견기업의 시장개척 역량 강화 등 각 부처 정책들도 ‘편식’이 심한 것은 마찬가지다. 대다수 골목상권의 영세 기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제 GDP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GDP가 늘어남에도 생활이 불안해지는 현상에 대해 이제는 정면대응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본다. 먼저는 행복을 규정하고 그것을 실현할 사회지표 개선 목표치와 정책 수단을 정비해야 한다. GDP가 증가하면 모든 문제가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은 곤란하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아니라 국민행복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그 정책적 구체화를 담은 ‘행복사회 실현 3개년 계획’이 아닐까 한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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