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철 칼럼] 박 대통령에게 아직 기회는 있다 기사의 사진
정치학의 일종인 대통령학에 기대-각성 이론(Expectation-disillusion theory)이란 게 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임기 초반에는 비현실적 기대감으로 매우 높지만 실제 업무수행 능력 간 갭이 드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학설이다(2013 대통령의 성공조건,이숙종·강원택 편저). 세상만사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이 이론은 대통령중심제 종주국인 미국보다 우리나라 대통령을 설명하는 데 더 잘 어울린다.

민주화 이후 국민의 선택을 받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를 시작하면서 선거 때 득표율보다 훨씬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70% 이상이었으며, 노무현·이명박 대통령도 60%에 육박했다. 하지만 임기를 마칠 때는 모두 30% 이하였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성공한 대통령’과 ‘실패한 대통령’을 가르는 국민의 평가 기준은 임기 종료 때 지지율 50%다. 우리 국민들에게 성공한 대통령이 퍼뜩 떠오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대부분 대통령이 50% 이상 지지율로 임기를 마친 미국과 대조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국민 지지율이 30%(한국갤럽 조사)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기대-각성 이론으로 위안을 삼기 어려울 정도로 급락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 당시 60%대로 비교적 높았으며, 2년차를 시작할 때도 50%대 중반 이상을 유지했다. 하지만 1년 만에 거의 반 토막이 나버렸다. 이런 지지율로는 국정을 힘 있게 수행하기 어렵다. 국민은 물론 야당으로부터 지지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기 레임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그렇다고 자포자기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 지지율은 반등이 가능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지지율이 급락한 임기 3년차를 맞아 노태우 비자금 수사와 5·18특별법 제정을 통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면서 국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옷로비 사건 등으로 위기에 빠진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이 밀어붙인 탄핵안 덕분에 반사이익을 얻었으며, 쇠고기 촛불시위로 치명상을 입은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사회 캠페인과 안보 이슈로 지지율을 상당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다들 임기 말에 친인척이나 측근 비리 등으로 다시 추락했지만 임기 중반에 반등 경험을 했다.

박 대통령은 임기 3년차를 시작하면서 경제 활성화, 국정개혁, 통일준비를 핵심 정책 어젠다로 제시했다. 이 가운데 국민의 이목이 쏠리는 건 역시 국정개혁이다. 공공 노동 교육 금융 등 4대 구조개혁을 말한다. 수많은 세부 개혁 과제 중 공무원연금 등 한두 가지만 깔끔하게 해결해도 지지율을 확 끌어올릴 수 있다. 국민 친화형 국정개혁이 중요한 이유다.

박 대통령은 임기 초반 전광석화처럼 개혁을 추진하는 데는 실패했다. 준비가 안 돼 기회를 놓친 것이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레이건, 클린턴, 오바마(1기)는 임기 말에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냈다. 각종 개혁 어젠다를 안정적·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다. 박 대통령은 이들의 개혁추진 전략을 벤치마킹해 볼 필요가 있다.

개혁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민과의 소통이 필수다. 국민을 등에 업지 않고서는 개혁 저항세력을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통은 국민의 뜻을 하늘처럼 받드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은 대통령에게 카리스마형 리더십이 아닌 화합형 리더십을 원한다. 지금까지의 오불관언식 불통으로는 개혁을 절대 성공시킬 수 없다. 정제된 여론이라면 국정에 즉각 반영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새해 들어 특보단을 구성하는 등 소통을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국민을 향해 귀를 활짝 열면 국민 지지율은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 박 대통령에게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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