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 예진이네가 말하는 양국 관계 “국가간 감정보다 국민들 사이 우정이 먼저” 기사의 사진
국내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일본 여고생 다테노 스즈양(오른쪽)이 지난 18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 김예진양(오른쪽 두 번째) 집에서 저녁식사를 앞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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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세종대왕상이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인사동에서 옛날 도시락도 먹고 호떡도 먹었어요!”

지난 18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아파트. 저녁 식사를 앞두고 등촌고 김예진(18)양 식구가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원래 네 식구였던 이 집에 이달 들어 ‘딸’이 하나 늘었다. 일본에서 온 다테노 스즈(?野凉·19)양이 15일부터 ‘홈스테이’를 시작하면서다.

후쿠시마공업고등전문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던 스즈양은 지난해 9월 전북 전주시 중원고등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의 최강창민에게 빠져 한국 유학을 꿈꿨었다. 한국의 TV 예능 프로그램으로 공부하던 한국어를 1년 동안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한 해 2∼3명에게만 주어지는 사단법인 한일협회의 교환학생 기회를 따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에는 방학기간 홈스테이가 있다. 여러 가정에 묵으면서 문화를 익히라는 취지다. 여기서 예진양 가족과 인연이 닿았다. 1990년대 초반 일본 오사카 유학 중 만나 결혼한 예진양의 부모님은 광복 70주년,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홈스테이를 받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아버지 김동규(50)씨는 “유학시절 5일간 일본의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음식이나 문화, 언어 적응에 큰 도움이 됐다”며 “같은 처지의 일본 유학생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막내 우진(15)군은 “외국인을 만나면 당황하기 바빴는데 스즈 누나가 오면서 일본어 실력도 늘고 마음도 열렸다”고 말했다. 스즈양은 “기숙사보다 자유로운데다 ‘엄마’가 차려주시는 식사가 아주 맛있다”며 신이 나 있었다.

스즈양은 유학을 결심하면서 매끄럽지 않은 한·일 관계, 서로에 대한 편견 등에 미리 겁을 먹었다고 한다. 마치 20년 전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 예진양의 부모처럼. 스즈양은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일부러 한·일 관계를 얘기하며 정면 돌파하는 쪽을 택했다. 그는 “역사 시간에 한·일 관계를 배울 때 답답하고 궁금한 점이 아직 많다”며 “어쩔 수 없는 사실이기에 더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예진양은 뉴스에서 일본의 부정적 측면을 다룰 때마다 교류 활동과 여행에서 직접 겪은 일본 사람들을 떠올리며 양국 관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을 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앞선 세대도 다르지 않다. 어머니 배시현(47)씨는 “유학 시절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또래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서로를 이해하게 되다보니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는 친구들이 생겼다”며 “정부나 국가가 가진 감정보다는 우정이 더 먼저 작동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씨는 “한·일 관계는 언젠가는 만나야만 하는 두 길 끝의 종착역과 같다”고 거들었다.

아이들에게 그 ‘종착역’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스즈양은 외교관을 꿈꾼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람들이 소통·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관리하는 외교관이 되고 싶어 한다. 큐레이터가 장래 희망인 예진양은 “두 나라의 문화를 서로에게 오해 없이 알릴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고 했다.

한일협회는 1971년부터 학술연구, 청소년 교류, 언어학습 지원, 유학 박람회, 전시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 교류를 추진해 왔다. 송부영 이사장은 “정치·외교 관계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지만 평소 쌓아온 민간 교류가 튼튼하면 흔들림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일 민간 교류의 방식이 체계적이지 못한 데다 통로가 부족하다고 했다. 한국에선 해마다 교환학생을 받아줄 학교와 홈스테이 가정을 찾는 게 쉽지 않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운영하는 민간 외교단체 커뮤니티에 등록된 일본 관련 단체는 14곳으로 중국 관련 단체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송 이사장은 “‘풀뿌리 교류’를 지향하면서 다양한 계층·연령·지역의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보다 성숙한 민간 교류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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