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명호] 그리스처럼 되지 않으려면 기사의 사진
지난 25일 그리스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압승한 것은 국가재정 위기에 따른 결과다. 재정위기는 그리스 정치권의 대중영합주의에서 시작됐다. 과도한 복지 혜택과 공무원 수 늘리기, 연금 올려주기 등 정치권은 좌우를 막론하고 총선 때마다 국민들에게 달콤한 사탕을 제시했다. 과잉 복지와 기형적 세금 지출에 따른 재정 파탄은 결국 2009년 그리스를 트로이카(국제통화기금·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로부터 구제금융 2400억 유로(292조원)를 지원받는 처지로 전락시켰다.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까지 갔던 그리스였다.

이후 펼쳐진 긴축정책은 복지 혜택을 대폭 줄였다. 누리던 것을 빼앗긴 국민은 분노했다. 급진좌파연합은 이번 총선에서 최저임금 인상, 빈곤층 전력 무상 공급, 중산층 감세 등의 구호로 긴축 중단 공약을 내걸었다. 무엇보다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을 내세운 게 주효했다. 빚을 안 갚겠는 말인데, 이게 국민들에게는 더없이 달콤하게 들렸다. 세금을 덜 내도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중영합적 공약으로 선거에서 이긴 것이다. 포퓰리즘으로 거덜 난 병을 포퓰리즘으로 치료하겠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절대 수치로 보면 그리스 복지가 꼭 과잉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회 지출이 GDP의 23.9%(2009년 기준)로, 스웨덴(29.8%)이나 프랑스(32.1%)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세수가 문제였다. 부유층과 고소득 전문직의 어마어마한 탈세, 천문학적 규모의 지하경제로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았다. 그리스에서는 ‘내야 할 세금의 40%를 공무원에게 뇌물을 줘 세금은 20%만 내고 나머지 40%는 자기가 챙긴다’는 4·4·2법칙이란 말이 생겼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유로존 가입 후 복지 지출은 가파르게 올라갔으니 수준에 맞지 않는 과잉 복지가 돼버린 것이다. 그리스 재정 파탄은 ‘상대적 과잉 복지’ 같은 대중영합적 정책을 내놓은 정치권과 세수 결손 및 왜곡된 세출이라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의 합작품이다.

그리스 사례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우리도 복지 문제로 어수선하다. 지난 대선을 치르면서 복지 문제는 이념과 진영 논리가 뒤섞이면서 저질 정치 싸움으로 변질됐다. 우리 사회는 ‘저부담-저복지’에서 ‘중부담-중복지’ 시대로 옮겨져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복지 팽창속도도 가장 빠르다. 국가 살림살이 상태를 알 수 있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 43조2000억원을 기록한 뒤 2010년 13조원, 2011년 13조5000억원, 2012년 17조4000억원, 2013년 21조1000억원, 2014년 1∼11월 30조2000억원으로 가파르게 올라갔다. 올해 복지예산은 처음으로 총지출의 30%를 넘어섰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2033년 이후 국가재정 파탄 위기가 올 수 있고 경고했다. 재정건전성 유지는 정권의 가장 큰 책무다.

이제는 대통령이나 국회가 더 이상 복지 문제로 허우적거리지 말고 빠져나와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됐다. ‘고복지’ 사회를 지향한다면 ‘고부담’을 해야 하고, 효율적 복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복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필요 없는 사람이나 계층에 복지 혜택이 돌아가고 있지 않은지, 중복으로 지출되거나 비효율적인 측면은 없는지 대대적으로 점검해 봐야 한다. 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 등 포괄적인 범위는 넓혔는데 여기저기서 불만에 찬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 고복지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복지 등 지출 분야에서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세수를 늘려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 프레임은 포기해야 한다.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여당 원내대표 경선 후보 입에서도 “지난 2년간의 실패”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실패는 2년으로 족하다. 국민 앞에서 대통령의 공약 자존심은 무의미하다. 대통령은 무오류도 아니다. 결과로써 책임질 뿐이다. 포기도 용기고, 정치지도자의 결단이다. 그리스처럼 되지 않으려면….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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