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일수] 정책의 출발은 바른 현실인식 기사의 사진
호주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이룬 한국 축구대표팀이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귀국했다. 55년 만에 아시아 축구 정상을 탈환하겠다던 애당초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국민들의 마음속엔 이미 고마움과 자랑, 또 그들이 엮어갈 장래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자리하고 있었던 게다. 7개월 전 브라질월드컵 직후 축구대표팀을 냉대했던 민심과는 너무나 큰 대조였다. 다 같이 죽을힘을 다해 뛰고 땀을 흘렸는데 왜 국민들의 반응과 평가는 이토록 다르게 나타나는가? 한국축구의 얼굴에 색깔을 입힌 감독들의 리더십이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입국장에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스포츠와 정치는 유사성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팀플레이가 중요한 운동경기일수록 감독의 지략과 전술은 최고경영인이나 최고정치지도자의 역할과 상통하는 점이 많다. 선수들은 지도자의 스태프나 막료와 근접한 위상을 갖고 있고, 관중의 마음은 민심과 같은 성향을 띤다. 이번 호주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한국축구의 새로운 면모는 탁월한 기술력보다 경기 종료까지 최선을 다해 상대팀을 압박하는 이른바 ‘한국형 늪축구’였다. 짧은 기간에 한국축구의 얼굴에 이러한 색깔을 입힐 수 있었던 것은 선수 선발과 기용에서부터 기존의 인맥이나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과 잠재성, 팀 화합과 조화 등 다양한 시각에서 과감한 쇄신을 시도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 사령탑이 먼저 냉철한 현실 인식과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 개선의 첫발을 과감하게 내디딘 용기다. 냉정한 평가를 통해 목표치를 과감히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과 과단성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가파른 하향곡선에서 돌아설 줄 모르고 있다. 지난해 말 청와대 문건 파동을 겪으면서 무너지기 시작한 지지율이 연말정산 파동을 거치면서 우회증세 논란에 휩싸여 우왕좌왕하는 사이 전통적인 지지층마저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복지 확대 정책은 변하지 않고 세수 확보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어려워졌다. 그러자 연말정산 삭감과 담뱃값 인상으로 유리알 납세자층과 서민들의 주머니까지 턴다는 원성이 높아졌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선거공학적 성격이 다분한 득표 전략의 일환이었지 현실적 정책 기조로 삼기에는 너무 이상적인 목표였다. 그 재원으로 거론된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축소, 세출 구조조정 등은 박정부 3년차에 접어들면서 대부분 추동력을 잃었다. 게다가 한국경제의 전망은 내외 시장의 여러 변수에 의해 그다지 밝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이런 여건에서 지난해에만 11조원의 세수 결손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증세 없는 복지 프로그램은 지금이라도 현실 여건에 맞게 시급히 재조정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선택의 방도가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점이다. 복지에 방점을 계속 둔다면 법인세 인상과 같은 뜨거운 이슈를 정면으로 논의할 수밖에 없으리라. 어쨌거나 내년 총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 중산층 이하의 지갑을 짜는 증세 카드는 아예 꺼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본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난제 중 하나이지만 언젠가는 뚫고 나가야 할 과제다. 채찍과 당근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문제 해결은 복지 축소에 있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도와야 할 사람은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이지 스스로 도울 수 있는 분이나 재산, 소득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무상복지 시리즈도 현실인식에 터 잡아 선별복지로 가야 한다. 지금 슈틸리케호가 필요한 이유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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