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만 정규직을 말하다]  ‘꿈’ 같은 정규직도… 불안에 떤다 기사의 사진
취업준비생들은 바늘구멍 같은 경쟁을 뚫고 꿈같은 ‘정규직’이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또 다른 난관에 부닥친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기업들이 경영난을 호소하는 가운데 도대체 정리해고와의 차이점을 분간할 수 없는 ‘희망퇴직’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50세도 되기 전 밀려나는 선배들을 보며 이제 갓 취업한 신입사원들조차 입사하면서부터 다른 살길을 고민한다. 정부에서 ‘과보호되고 있다’고 지적하는 대한민국 정규직의 현재 모습이다.

◇기업이 보장해주는 삶, 기대 접었다…유랑하는 30대 정규직=현재 일본에 유학 중인 이상현(가명·35)씨도 1년 전까지는 ‘월급쟁이’ 직장인이었다. 대학원 석사까지 마친 이씨가 2009년 처음 들어간 회사는 직원 수 200명 남짓한 중소기업이었다. 이씨의 전공은 나름 전문 분야가 있기에 중소기업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습기간도 채 끝나기 전 회사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전 직원의 연봉이 감축됐고, 곧이어 이씨가 속한 팀도 사라졌다. 출근해도 할 일이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다행히 관련 분야 한 대기업 입사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안정적일 줄 알았던 대기업에도 ‘고용불안’이 있음을 입사 후에야 알게 됐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사고과가 중요했고, 인사고과 권한을 지닌 상사 앞에서 ‘진취적인 업무’는 불가능했다. 잘 살아남아도 10년, 그것이 최대치로 보였다. 회사 내 생존에 매달리다 10년 뒤 밀려나면 그대로 ‘끝’이라는 위기감이 왔다. 고민 끝에 회사를 나왔다. 2013년 일본으로 떠나 박사학위를 밟기 시작했다. 한국에 두고 온 어린 딸과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회사가 월급쟁이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면 내 전문성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40대에게 허락되지 않는 평생직장, 쫓겨나는 대기업 과장들=현대중공업 과장급인 박진수(가명·41)씨 입장에선 젊고, 공부할 전문분야가 있는 이씨 사례가 오히려 부럽다. 전형적인 한국의 안정적 대기업인 현대중공업에서 박씨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으로 커 왔다. 정년까진 아니더라도 50대까진 다닐 수 있는 나름의 ‘평생직장’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박씨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회사는 올 초 전체 과장급 6000명 중 1500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 분위기는 유례없이 흉흉하다. 고과점수가 별로 좋지 않은 박씨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차라리 더 늦기 전에 희망퇴직해 받은 돈으로 다른 가능성을 찾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동의했다. 그런데 희망퇴직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희망퇴직 대상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회사 내 희망퇴직자 명단이 정해져 있다는 소문이 실제일 줄은 몰랐다.

언젠 내 차례가 될지 몰라 불안해하며 지금 상황을 버텨내야 한다는 사실에 더 암담해졌다.

◇‘로또’처럼 정규직 취업문 연 20대, 들어온 회사엔 미래가 없다=암담함은 고스란히 아랫세대로 전이되고 있다. 지난해 취준생들이 가장 꿈꾸는 재벌그룹 계열사에 취업한 27세 신지민(가명·여)씨는 2일 “이 회사는 내가 꿈꿔왔던 분야에서 제일로 꼽히는 회사였다. 그런데 여기서조차 내 미래로 삼고 싶은 ‘롤 모델’은 없다는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씨가 속한 조직에 남아 있는 40대 여자 선배는 한 명뿐이다. 경쟁이 치열한 업계에서 여성이 살아남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성이 결혼하면 회사에서 눈치 준다는 얘기가 어엿한 대기업 정규직으로 입사한 자신에게도 적용될 줄은 몰랐다. 사정이 나은 남성 상사들 중에도 50대는 찾기 어렵다. 이제 2년차에 접어든 신입사원 신씨는 그래서 ‘플랜B’를 고민하고 있다.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신씨는 “다른 데가 더 나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평생직장은 집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과외뿐인 것 같다”며 답답해했다.

현실 속 정규직들의 사정은 세대별로, 회사 규모별로, 또는 분야별로 각양각색이다. 강성 노조의 보호를 받는 극히 일부의 대기업 근로자가 ‘1200만 정규직’을 대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보호 정규직 대 비정규직’ 식의 이분법적인 접근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민영 기자, 세종=이용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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