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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노동시장은 이중구조가 문제라고 한다. 시장 안에 장사할 자리가 마련된 근로자는 비교적 안정된 임금과 고용을 보장받는 반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좌판’ 근로자는 임금·근로조건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중구조의 가장 큰 원인을 정규직의 고임금 구조로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정규직의 ‘파이’를 비정규직과 나누자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정규직 vs 비정규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만으론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설명될 수는 없다.

◇10년째 ‘무늬만’ 정규직=그는 27세 때인 2006년 첫 직장을 얻었다. 직원 40명 정도 장비 제조업체의 설계직이었다. 오전 8시 출근해 저녁 9시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세금을 떼고 손에 쥐는 월급은 150만원이었다. 야근수당은 없었다. 1년 후 회사가 사상 최대 수익을 냈다. 그러나 연봉은 동결됐다. 3년 뒤 회사를 나왔다. 새로 들어간 직장은 나름 규모가 컸다. 4대 그룹 중 한 곳의 1차 협력업체다. 연봉 2500만원에 계약했다. 그런데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전 직원 연봉이 30%나 깎였다. 회사는 경영 사정이 나아지면 채워주겠다고 했지만 근로계약에 따라 매년 임금이 3%씩 올랐을 뿐 그 약속은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근무 여건도 이전 직장과 별 차이가 없다. 회사는 회의시간을 저녁 8시로 잡아 야근을 강제했고, 주말에도 불려나갔지만 주말수당 역시 없었다.

◇어느 외국계 기업의 비정규직=30대 초반의 그녀는 외국계 유통회사 비정규직이다. 본사는 미국에 있고 한국지점에는 직원이 50명 정도 근무하는데 그중 비정규직은 그녀를 포함해 2명뿐이다. 그녀는 지난해 2월 10개월의 경력계약직으로 들어왔지만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6개월 계약이 연장된 상태다.

업무량은 많지만 예전 직장처럼 상사 눈치에 퇴근을 미루는 일은 없다. 자기 일만 마치면 늦어도 저녁 7시면 회사를 나설 수 있다. 월급도 세후 300만원 정도로 적지 않다. 연간 휴가는 15일로 합의했다.

비정규직이라 성과급을 받진 못했지만 불만이 없다. 고용계약을 한 번 더 연장해도 최대 내년 2월이면 잘릴 수밖에 없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법상 비정규직을 2년 이상 고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길은 계약 만료에 따른 퇴직과 정규직 전환 두 가지뿐이다. 그러나 그때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불만이 없을 것 같다. 법에 보장된 근로시간이 보장되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은 첫 직장이기 때문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4일 “노동시장 이중구조 원인을 정규직의 인건비가 높기 때문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며 “민간과 공공부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근로 여건 차이가 오히려 이중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이용상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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