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개헌은 블랙홀이 아니다 기사의 사진
개헌논의 물꼬가 터졌다. 야당의 개헌 주장에 새누리당이 “논의 못할 게 없다”고 호응하면서 탄력이 붙었다. 개헌이 새삼스러운 화두는 아니나 이번은 이전과 사뭇 양상이 다르다.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국민 다수가 바라고 있고, 여야를 초월해 정치권에 폭 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데다 하려는 의지 또한 강하다. 지난해 10월 상하이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논의가 봇물이 터질 것이며, 봇물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다”고 했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예언대로다.

민주항쟁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탄생한 현행 헌법은 권위주의 체제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1노(盧)3김(金) 타협의 산물이다. 유신 이후 15년간 빼앗겼던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는 데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대통령 5년 단임제라는 기형아가 태어났다. 그 결과 1노2김은 대통령이 됐고, 나머지 한 김은 DJP 공동정권의 지분을 가진 실세 총리가 됐다. 돌아가면서 대통령이 되려는 1노3김 권력욕의 다른 이름이 ‘87년 체제’다. 그래서 개헌론엔 ‘3김시대’로 통칭되는 구체제를 청산하자는 시대적 요구가 녹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올해는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해로 국가 혁신을 위해 국력을 결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역설했다. 그렇다. 현행 5년 단임제를 바꾸지 않고서는 임기 동안 거의 해마다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판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일치하지 않아서다. 두 헌법기관의 임기를 일치시켜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를 경우 별도 선거에 따른 막대한 예산을 줄일 수 있고, 박 대통령이 말한 ‘절호의 기회’ 또한 더 많이 잡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원 포인트 개헌을 추진했던 이유다.

현재 개헌논의는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 권력구조 개편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4년 중임제는 무능한 대통령은 4년 만에 교체하고, 반면 유능한 대통령에겐 4년의 기회를 한 번 더 줄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능력의 유무에 상관없이 똑같은 임기를 보장한 현행 5년 단임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 권력을 분산하는 이원집정부제는 책임정치를 기대할 수 있다. 대선과 총선 결과가 다를 경우 국회 다수당이 총리를 맡는 프랑스 등의 사례를 따른다면 야당도 국정 운영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와 유사한 경기도 연정(聯政)이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는 걸 보면 경험해보지 못한 제도라고 해서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의원내각제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국민 선호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도입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관건은 시기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우윤근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2월 국회개헌특위 구성, 내년 4월 국민투표 실시’라는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했다. 다수 국민들도 개헌은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이다. 여론조사를 100% 신뢰할 수 없다 해도 ‘박 대통령 임기 내에 개헌해야 한다’는 응답이 66%에 이르는 결과(지난해 11월 R&B리서치 조사)도 있다.

박 대통령은 “개헌론은 블랙홀”이라며 개헌에 부정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헌을 못하는 게 아니다. 개헌안은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도 재적의원 과반수로 발의할 수 있다.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 회원 수만 150여명이다. 재적의원의 절반이 넘는다. 국회가 확고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면 개헌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개헌을 논의하면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개헌론에 빠져들면 다른 일을 못한다”는 박 대통령의 우려는 대한민국 수준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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