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 왜곡된 시각 확산 기사의 사진
일본 아이치(愛知)현에 있는 인구 37만명의 작은 도시 도요하시(豊橋). 지난해 12월 21일 낮 12시 JR도요하시역 앞에 일장기와 태극기,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손에 든 중장년층 남녀 10여명이 모였다. 이들이 펼친 흰색 플래카드에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한국과 국교를 단절하자’ ‘한국 매춘부는 일본에 오지 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대표적 혐한 단체 ‘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在特會·재특회)’ 회원들이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 이날 시위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여러분은 한국의 실체를 알고 있습니까? 여행을 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습니까? 식중독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여성은 밤에 혼자 걸어 다닐 수도 없습니다. 잡지에는 한국 여행이 즐겁다고 나오는데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중년 여성은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강변했다.

시민들에게 전단을 나눠주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중년 남성은 “도요하시에서 여름방학 때 초등학생들을 한국에 보내 홈스테이를 하는데 매년 200만엔이 든다. 이 돈은 모두 시민들의 세금”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재특회의 ‘헤이트 스피치’(증오 연설)는 도요하시역에서 1시간 이상 울려 퍼졌다. 이를 제지하는 경찰이나 시민은 없었다.

10년 전부터 ‘혐한(嫌韓)’ 바람이 일본 열도를 불어닥쳤다. 도쿄·고베 등 대도시를 비롯한 일본 전역에서는 재특회 등이 주도하는 크고 작은 혐한 시위가 매주 열리고 있다. 갈수록 나쁜 감정이 쌓이고 있지만 마땅한 해법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외교부에 따르면 일본의 우리나라 공관 주변과 한인 밀집지역에서 발생한 혐한 시위는 2010년 22건에서 2013년 319건으로 폭증했다. 2012년 8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일반 시민이 느끼는 한국에 대한 호감도 역시 크게 달라졌다. 2011년 일본 내각부가 전국 20세 이상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의식 조사에서 일본인 10명 중 6명이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다’(62.2%)고 답했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는 180도 달라진 결과가 나왔다. 일본인 10명 중 6명 이상이 ‘(한국에)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66.4%)고 했다. 1975년 조사 시작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

혐한 출판물도 일본 사회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출판유통업체 도한이 발표한 2014년 베스트셀러 신서 논픽션 부문에서 ‘바보 같은 한국’이라는 의미를 담은 ‘보한론’이 1위에 올랐다. 저자 무로타니 가쓰미(室谷克實)는 지지통신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서울특파원을 지냈다. 그는 2013년 ‘악한론’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재특회장을 지낸 사쿠라이 마코토가 지난해 9월에 펴낸 ‘대혐한시대’는 하반기 베스트셀러에 꼽히기도 했다. 재특회원은 2007년 발족 당시 500여명에 불과했지만 지금 1만5000명에 이르는 규모로 커졌다.

방송 등 일본 언론도 자극적·상업적 보도로 혐한 기류를 부추긴다. 도쿄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남호(27)씨는 “최근 한국에 대한 자극적 뉴스가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다”며 “지난해 ‘세월호 참사’나 최근 ‘땅콩회항’ 사건은 아침 뉴스 와이드 쇼에 매일같이 나왔다. 한국을 잘 모르는 일본인이 보면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한류(韓流) 상품에 직접 타격을 입히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산 막걸리의 대일 수출액은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81.1% 급감했다. 2011년 4841만800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2012년 3199만 달러, 2013년 1362만5000달러로 점점 줄다가 지난해 914만8000달러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라면 수출량 역시 최고치를 기록했던 2011년(1만1405t)의 절반 수준(5534t)으로 떨어졌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해 8월 일본 정부에 인종차별 행위 근절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도 높게 권고했다. 두 달 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2009년 교토 제1조선학교 주변에서 혐오 시위를 일삼은 재특회에 대한 배상 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혐오 시위 규제 입법은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구라 기조(小倉紀藏·55) 교토대 종합인간학부 교수는 지난해 11월 서울대 특강에서 “일본 국민들 사이에 한국은 ‘성공했지만 비겁한 승리자’ ‘믿을 수 없는 나라’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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