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엄상익] ‘니트족’의 절망을 애도하며 기사의 사진
인터넷상에서 청년백수의 마음을 대표하는 글 한편을 봤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취직하기가 불가능하다. 어학연수까지 갔다 와도 무의미하다. ‘SKY’대학 출신들조차 취업현장에서 버림을 받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넘어갈 수 없는 벽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위 1%가 안 되면 결국 노예일 뿐이다. 편의점 알바, 서빙을 해서 목돈을 모아봤자 개미는 무조건 지는 게임이다. 백화점 감정노동은 돈 있는 사람에게 노예임을 인정하고 한없이 굽실거려야 하는 일이다. 부자들은 끼리끼리 무너지지 않는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 귀족처럼 산다. 빈곤주택가에 사는 애들과 어울리게 하지 않는다. 고위층에서는 청년실업률이 높은 이유가 “대학 나온 애들이 눈높이가 높아서”라고 한다. 그 건 돌려서 말한 거지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노예 신분인 니들이 어디서 겉멋만 들어서 높은 층에 오려고 하느냐’라는 의미다. 전에는 개인이 노력하지 않은 탓으로 여겼다. 근데 지금은 발버둥쳐도 넘어갈 수 없는 벽이 있다. 그래서 스스로 ‘니트족’이 된다. 일할 의지도 공부할 의지도 없다. 애를 나을 생각도 없다. 애를 낳아야 노예가 될 뿐이니까. 글은 절망감 속에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필자도 38년 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로 종로거리에서 대기업사원이 된 친구의 데이트 장면을 목격했다. 내 신세가 부끄러워 뒷골목에 숨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금 숟가락 물고 태어난 친구들을 미워했다.

내 아버지세대도 비슷했다. 1960년대 현대한국문학전집에 나오는 시를 보면 ‘수제비 한 그릇 먹고 오후 내내 사직공원 벤치에서 지냈다’는 말도 나온다. 회사원이던 아버지의 대학동창명부를 본 적이 있었다. 같은 과에서 겨우 두 명 취직을 한 걸 보았다. 산업이 형편없던 시절이었다. 시내에 거지가 우글거리고 판잣집들이 게딱지 같이 청계천가나 낙산위에 붙어있던 시절이었다. 생존 앞에서 ‘노예’라는 말은 사치였다.

그러면 물질이 풍요한 미국은 자유인의 사회일까. 마르쿠제는 미국사회도 역시 고도의 계급사회라고 했다. 노예들이 조금 생활형편이 나아지고 다소 살기가 편해졌다고 예속상태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소 안락한 지위에 있는 노비라고 했다. 미국은 대중의 물질적 문화적 욕망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체제에 복종하도록 마비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약간의 임금개선에 오금을 펴지 못하고 주인에 의해 쉽게 마비되고 조작되는 시민들이라고 평가했다.

마르쿠제는 사슬을 끊어 버리고 새로운 형의 인간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저급화된 욕망, 비굴해진 만족의 인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이 탄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자체가 새롭게 정화되지 않는 한 획기적인 사회제도의 변혁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결국 의미가 없다고 했다. 마르쿠제는 그런 형태의 인간을 ‘뉴아이디어맨’이라고 했다.

나의 경우도 젊은 시절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기 위해 고민했다. 부자들일수록 더 강한 욕망의 사슬에 매여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 역시 그 영혼을 맘몬신이 지배하고 있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 가난해도 행복지수가 높고 심지어 감옥에 있어도 기쁨과 환희를 느끼는 사람들을 보았다. 경전속의 그런 모델도 있었다. 상위1%의 왕족에서 밥을 얻어먹는 처지가 된 부처는 행복했다. 사형대에 오른 가난한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했다. 니트 족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젊음과 남은 시간만 해도 얼마나 큰 재산인지. 영혼의 주인을 바꾸고 시선을 돌렸으면 좋겠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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