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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명명에 불교계 조직적 개입

교계 “봉은사역은 종교 편향… 중립적인 코엑스역으로”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명명에 불교계 조직적 개입 기사의 사진
사찰 이름이 단독역명으로 결정되면서 종교편향 논란이 일고 있는 서울 지하철 9호선 929정거장 공사 현장. 공사장 바로 뒤에 아셈센터와 코엑스센터(오른쪽)가 보인다. 허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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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28일 개통되는 서울 지하철 9호선 2단계 구간 929정거장 명칭이 ‘봉은사(奉恩寺)역’으로 확정되면서 종교편향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가 929정거장에서 훨씬 가깝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코엑스 대신 특정 종교시설 이름으로 역사명을 정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역명 설문조사 때 불교계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선정 과정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봉은사역은 역명제정 기준에 맞지 않아=‘봉은사역’이 들어서는 곳은 왕복 12차선 도로가 나 있는 서울 코엑스 사거리다. 코엑스와 바로 연결되며,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와는 120m 떨어져 있다. 이 지역은 근처에 지하철 2호선 삼성역이 있고 현대자동차 신사옥이 입주할 예정이어서 교통 요지로 손꼽힌다.

서울 강남구청은 2013년 12월과 지난해 1월 두 차례 설문조사 후 서울시지명위원회에 ‘봉은사역(코엑스역)’ ‘코엑스역(봉은사역)’을 추천했다. 그러나 서울시지명위는 지난해 4월 코엑스를 배제한 채 역명을 봉은사역이라는 단독명칭으로 결정했으며, 지난해 12월 확정 고시했다. 현재 9호선 전동차 스크린에는 역명이 봉은사역으로 나온다.

서울시는 봉은사가 역사성이 있다는 이유로 역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서울시지명위는 ‘봉은사가 강남을 대표하는 전통사찰이기 때문에 역사성이 있는 봉은사가 역명으로 적정하며 병기(倂記)는 불허한다’고 결정했다. 당시 종교적 논란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지하철 역명제정 기준’을 보면 이러한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하철 역명제정 기준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불리며 해당 지역과의 연관성이 뚜렷하고 지역 실정에 부합하는 옛 지명 또는 법정동명, 가로명 등’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코엑스 사거리에 들어서는 역 이름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불리며 해당 지역과의 연관성도 뚜렷한 코엑스역이 돼야 한다. 또 서울시지명위의 ‘역명제정 시 배제 기준’에는 ‘특정단체의 홍보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명칭이나 향후 분쟁 또는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은 배제하라’고 돼 있다. 봉은사역은 이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

◇코엑스 배제 이유 전혀 납득할 수 없어=만약 논란을 피하기 위해 중립적 명칭을 선택한다면 ‘삼성’이라는 법정동명을 써야 한다. 그러나 이미 2호선에는 삼성역이 있다. 서울시는 이런 경우에 대비해 4가지 추가 제정원칙을 두고 있다. ‘역사에 인접하고 있는 고적, 사적 등 문화재 명칭’ ‘이전 우려가 없고 고유명사화 된 주요 공공시설물’ ‘지역을 대표하는 다중 이용시설 또는 역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는 지역명칭’ ‘시설물이 대표 지역명으로 인지가 가능한 시설명’이다. 이 원칙에 따르더라도 코엑스역이 가장 적합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봉은사는 불국사처럼 고적이나 사적,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지명위는 기준에도 없는 ‘역사성’ ‘강남을 대표하는 전통 사찰’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봉은사역으로 결정했다. 일방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코엑스측은 지난해 서울시지명위에 ‘코엑스라는 명칭을 병기라도 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코엑스 관계자는 “코엑스는 매일 10만명이 찾고 국제회의·콘퍼런스만 해도 연간 3000건이 넘게 열리는 주요 사회기반시설인데도 역명에 병기조차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코엑스는 시민편의 차원에서 지하철역에 80㎡의 토지를 내놨지만 역명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관계자는 “지하철역이 코엑스 광장으로 연결되는 데 코엑스 측에서 80㎡의 공간을 시민편의를 위해 내놨다”면서 “지하철 공사와 관련해 봉은사 토지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으며, 봉은사는 건설비용을 부담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기여도나 형평성 차원에서도 봉은사역 결정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불교계, 역명 투표에 조직적 참여해 표심 왜곡=역사명 논란은 객관성이 떨어지는 ‘인기 투표식’ 강남구청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촉발됐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대한불교조계종이 조직적으로 인터넷 설문조사에 참여함으로써 표심을 왜곡한 정황이 드러났다.

2013년 12월 강남구청이 주민센터에서 수행한 1차 선호도 조사까지만 해도 1위 코엑스, 2위 봉은사, 3위 아셈으로 나왔다. 불교계는 봉은사역을 관철시키기 위해 ‘조계종 봉은사 역명제정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2만명 서명 작업과 홍보 캠페인을 벌였으며, 신도들을 상대로 인터넷 투표 참여를 적극 독려했다. ‘지하철 9호선 929역은 봉은사역이 되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투표 방법이 적힌 전단까지 만들어 배포했다.

봉은사는 아예 인터넷 게시판에 강남구청 인터넷 투표에 곧바로 접속하도록 주소 링크까지 해 놨다. 게시판 조회수는 2500건이 넘었다. 불교계 인터넷 언론도 투표 방법을 적극 알렸다. 그 결과 2차 인터넷 설문 조사 응답자 1440명 중 봉은사가 찬성률 60.5%로 코엑스(35%)를 앞섰다.

강남구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설문조사는 절차대로 진행됐다. 강남구청 홈페이지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봉은사에서 그렇게 할 줄 어떻게 알았겠느냐”면서 “봉은사가 인터넷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유리하게 작용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주민 의견을 수렴해 선호하는 역명을 서울시지명위에 상정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서울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서울시지명위가 역명을 제정할 때 ‘봉은사’를 우선적으로 제안한 강남구청의 의사도 고려했다. 불교계에서 강남구청 설문조사에 조직적으로 참여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한국교회 “봉은사역은 엄청난 특혜이자 종교편향”=한국 교계에선 공공재로서 중립적 가치를 갖는 지하철역 명이 특정종교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즉각 논평을 내고 “불교계는 2008년부터 타종교에 대해 종교편향을 들먹여 왔다”면서 “한국이 불교국가도 아닌데 사찰 이름을 역명으로 정한 것은 종교편향 논란에 불을 지피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전용태 세계성시화운동본부 공동총재는 “종교편향은 국가가 특정종교에 재정·행정 지원을 편향적으로 할 때 발생한다”면서 서울시의 종교적 중립을 촉구했다. 전 공동총재는 “일반 대학이나 기관은 홍보를 위해 지하철 역명병기에 수억원을 지불한다. 서울시가 사찰명을 단독 역명으로 선정한 것은 엄청난 특혜를 준 것”이라며 “만약 서초역을 한국의 대표적 교회인 사랑의교회 이름을 따서 사랑의교회역이라고 하면 불교계에서 가만히 있었겠나. 서울시는 종교적 중립을 지켜 역명을 코엑스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수도권 전철 역사 중 사찰명을 사용하는 곳은 1호선 망월사역이 유일하다. 코레일 관계자는 “망월사역은 1966년 경원선이 개설될 때부터 역명으로 사용했으며, 86년 1호선 전철이 그 자리에 개통되면서 이름을 그대로 썼다. 봉은사역과는 전혀 다른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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