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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박용천] 아동 폭력과 덕수의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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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의 공분을 자아낸 어린이집 아동 폭행사건으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혹시 내 아이는?”이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어린 아이들에 대한 폭력은 단순한 폭행의 차원을 훨씬 넘는다. 어린이의 경우 심한 충격을 받으면 뇌세포가 영향을 받아 정상적으로 발달해야 할 뇌신경 회로에 이상이 생긴다. 이렇게 잘못 형성된 뇌신경 회로를 교정해주지 않고 방치하면 그 사람의 성격으로 굳어진다. 뇌세포는 어릴수록 가변성이 많아 어려서부터 잘 키워야 건강한 정신의 성인이 된다.

정신치료 분야에서 유명한 보고서가 있다. 0∼3세 사이에 정신적 충격을 받아 회복되지 않으면 정신병이 될 가능성이 많고, 3∼6세 사이의 경우라면 노이로제, 즉 신경증 환자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임상보고이다. 오래전 미국의 스피츠(Spitz)라는 학자는 시설이 잘되어 있지만 사람의 손길이 부족한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와 시설은 열악하지만 사람들의 귀여움을 많이 받으며 여자교도소에서 자라는 아이를 비교한 결과 손길이 가지 않는 보육원의 아이들이 발육이 늦고 병에 잘 걸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를 의존우울증이라고 하였다. 외적 환경보다는 어머니의 정서적 영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결정적인 발견이었다.

어릴 때 심한 충격 받으면 정신병 될 수도

미국에서는 이런 연구결과를 정부의 정책에 반영해 법으로 어린이를 보호하게 만들어 놓았다. 또 어린아이를 혼자 집에 방치하면 경찰이 출동한다. 어린 시절 부모가 없이 혼자 집에 있으며 무서움에 떨었던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포와 불안은 나중에 성인이 됐을 때 불안장애를 쉽게 일으킬 수 있다. 공황장애 환자들의 과거력을 조사해보면 공황상태에 빠졌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엄마를 잃은 아이는 파랗게 질려 울고불고 한다. 바로 이것이 공황상태이다. 성인이 돼서 아무런 자극이 없는데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공황상태가 어린 시절의 재현인 것이다.

최근 1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에는 흥남 철수 때 주인공 덕수가 어린 동생 막순이를 등에 업고 배에 오르던 중 뒤에서 누가 동생을 잡아당겨 동생을 놓치는 장면이 나온다. 정신의학자인 필자에게는 이 장면이 엄청난 충격이었다. 동생을 놓쳤을 때의 덕수의 느낌은 어땠을까? 동생이 등에서 떨어져나가는 섬뜩한 느낌이 선명히 저장되었을 것이고, 어린 덕수에게는 그 순간이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어린이 보호해야 국가의 미래 건강해져

뇌의 변연계라는 곳은 감정을 저장하는 기능을 하는데, 변연계는 시간관념이 없고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가 없다. 그래서 현재에도 비슷한 자극만 주면 원치 않아도 자기도 모르게 그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덕수는 평생을 죄책감과 슬픔으로 보낼 수밖에 없게끔 변연계의 회로가 바뀌었을 것이다. 이 장면의 중요성을 파악하면 그 후 덕수의 무모하리라 생각될 정도의 행동들도 모두 이해가 가능하다. 탄광 사고로 고립된 친구를 구하러 가고, 불쌍한 베트남 어린이를 구하려다 부상까지 당한 덕수의 행동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덕수의 고집불통이고 주변 사람들과의 마찰을 일으키는 행동도 어린 시절 형성된 성격에서 기인한다.

이렇듯 어린 아이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앞으로 평생의 성격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린아이들을 잘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 자녀 양육을 하고 또한 정책입안자들도 이러한 의미를 알고 어린아이의 보호에 걸맞은 법을 만들고 실천해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건강해질 것이다.

박용천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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