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현역 최고령 사회자’ 송해 “내 나이가 어때서∼ MC 자리 50년 뒤에나 물려줄 것” 기사의 사진
현역 최고령 MC이자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터줏대감 송해가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공연에서 관객들에게 자신의 애창곡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열창하고 있다. 구성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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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 ‘국제시장’이 누적 관객 수 1300만명을 넘어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에 오른 8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는 국제시장을 연상하게 하는 공연이 열렸다. 바로 ‘송해 신년 음악회’다. 황해도 재령 출신인 송해가 올해 처음으로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무대에 올린 것이다. 733석이 가득 들어찬 가운데 1951년 1·4후퇴 때 영상을 배경으로 막이 오른다. 이어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금순이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다시 만날 때까지 굳세게 잘 지내기를 바라는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가 연주된다. “금순아!”라고 외치며 마이크를 잡고 등장한 송해가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라며 구슬프게 불러 젖힌다. 어머니를 뒤로하고 배를 타고 혈혈단신 월남했던 64년 전 바로 자신을 노래하고 있는 듯했다. 원래 이름인 ‘송복희’를 버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이름을 ‘해(海)’라고 바꾼 그날 말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굴곡진 인생을 산 송해(88)를 무대 뒤에서 2시간 동안 지켜봤다. 대기실에서 만난 그는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목소리는 쩌렁쩌렁했고 노랫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1·4후퇴, 그리고 송해의 ‘국제시장’

공연 시작 1분 전. 출연자들 대부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그는 오른손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연신 외쳤다. 무대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린이합창단에게는 “연습한 대로 하면 된다”며 격려를 잊지 않았다. 시작을 알리는 “큐” 사인이 떨어지자 ‘굳세어라 금순아’를 시작으로 ‘경상도 아가씨’ ‘이별의 부산정거장’ ‘저무는 충무로’ 등 피난살이의 애환을 애절하게 읊어댄다. 구구절절 자신이 밟아온 인생 그 자체였다. 어떻게 노래를 그렇게 잘 하느냐고 물어봤다. “휴전 직후 들어간 악극단에서 많이 배웠다. 그렇게 잘 부르는 것은 아니다”고 겸손해했다. 해주예술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송해는 1955년 창공악극단 가수로 문화·예술계에 데뷔했다. 트로트곡 메들리, 자신의 인생을 담은 창작곡 등 앨범을 8집까지 내기도 했다. 올해가 벌써 데뷔 60주년이 된다.

악단 생활을 하면서 처음 무대에 섰던 바로 그 작품 ‘홍도야 우지 마라’가 이어졌다. 후배 코미디언 이용식씨가 변사로 변신했고, 송해는 홍도로 분장해 또 한번 관객을 울렸다. 당시 상황을 들어봤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 노래만 해서는 밥을 먹을 수 없던 시대였다. 콩트는 물론 희극, 쇼 등 닥치는 대로 다했다. 악극단에서 생활이 어려워 중간에 도망치는 사람이 많아 그 자리도 수시로 메워야 했다.”



#아들 잃은 아픔 승화시킨 전국노래자랑

송해 하면 떠올리는 ‘전국노래자랑’ 장면도 무대에 올랐다. 이번에는 방송인 이상벽씨가 찬조 출연했다. 이씨가 “전국노래자랑 MC를 그만 자신에게 물려주면 어떻겠느냐”고 운을 떼자 송해가 “당연히 내 후계자는 당신이다. 그런데 50년 뒤에나 그렇게 하자”고 재치 있게 응수한다. 순간 좌중이 웃음바다로 변한다.

그가 전국노래자랑을 맡게 된 사연은 이렇다. 스물한 살이던 외아들이 1987년 한남대교에서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송해는 17년 동안 진행하던 라디오 교통방송 프로그램에서 돌연 하차한다. 교통방송을 하는 자신이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었는데 도저히 마이크 앞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참척(慘慽)의 아픔에 서울 남산에 올라 자살까지 시도하기도 한 그에게 당시 KBS 안인기 PD(영화배우 안성기씨 친동생)가 찾아왔다. “다 잊어버리고 야전부대 한번 합시다”라며 전국노래자랑 MC를 제안했고 고민 끝에 수락했다고 한다. 그때가 1988년 5월이었으니 결국 아들을 먼저 보낸 슬픔을 28년째 진행하고 있는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위로받고 있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그는 요즘도 녹화 하루 전 해당 지역으로 내려간다. 작가가 쓰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직접 가서 그 지역 사람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서다. 언제나 들르는 장소는 목욕탕과 재래시장이다. 목욕탕에서는 벌거벗고, 재래시장에서는 순댓국 한 그릇 먹으면서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동네 현안을 비롯해 별의별 사연을 다 들을 수 있다. 거기서 메모한 내용을 녹화 현장에서 풀어놓으면 무대가 뒤집어진다고 한다. “12일 녹화가 있는 충북 영동 편을 준비하기 위해 11일 현장으로 내려간다. 이제는 그 일이 몸에 배어 있어 하나도 힘들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국내 최고령 현역 MC이자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의 터줏대감다웠다.

#구순 앞둔 새로운 도전 전국투어

송해는 설날인 19일 서울 올림픽홀을 시작으로 부산 시민회관(21일), 창원 KBS홀(3월 1일)에서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타이틀은 ‘송해 90수 기념 빅쇼’다. 가수 조경수와 문연주, 원로 코미디언 함재욱과 원재로, 양희봉관현악단, 조수임무용단 등이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전국 투어라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서는 것이다. 우리 나이로 89세임에도 공연을 ‘90수 기념 빅쇼’로 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껄껄 웃었다. “구봉서 형님이 ‘넌 나랑 동갑 아니냐’는 말을 한 적이 있어서 1925년생으로 알고 계신 분이 있는데 사실 난 1927년생이다. 우리에게는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미풍양속인 ‘에누리’가 있다. 88, 89세가 되면 구순이라고 대접해주지 않느냐.” 그러면서 나름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실향민이기 때문에 광복과 분단 70년을 맞은 올해가 누구보다 남다르다. 과거 70년을 돌아보면서 미래 30년을 얘기해보자는 마음으로 공연을 기획했다.”



#건강 비결은 ‘BMW’, 사람 부자가 제일 부자

이번 주 그의 스케줄을 보자. 8일 마포 공연, 9일 IBK 기업은행 CF 촬영, 10일 서울투어 앞둔 양재동 연습, 11일 전국노래자랑 충북 영동 사전 답사, 12일 전국노래자랑 현장 녹화…. 젊은 사람도 소화하기 힘든, 그야말로 전국을 누비는 강행군이다. 건강 비결이 궁금했다. 그가 내놓은 대답을 추려보면 버스(Bus)·전철(Metro)·걷기(Walking)다. 방송 녹화가 없는 날이면 서울 낙원동 사무실로 출근하는데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탄다. 종로3가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걷는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운동도 거르지 않는다. 매니저도 없고 코디네이터도 없다. 휴대전화는 있지만 평소엔 꺼뒀다가 나중에 켜봐서 꼭 연락할 곳만 한다고 한다. “나를 너무 구속하지 않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건강 비결이면 비결이다. 십수년 전에 돌아가신 정주영 선생을 만났는데 대뜸 ‘세상에서 제일 부자 오셨네’라고 하더라.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사람 많이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송해가 최고 부자다’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반겨 좋지만 때로는 민폐(?)를 끼칠 때도 있다고 한다. “요즘에는 식당을 가도 식사비를 안 받으려 하고, 차를 타도 차비를 안 받으려고 해서 억지로 돈을 던져주고 나와야 한다. 어디를 가도 ‘건강하시라’는 덕담을 듣고 있어 내가 이렇게 건강한 게 아닌가 싶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고향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는 것이란다. 그러면서 피난 중에 생이별한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도 토로했다. “내 고향 황해도 재령은 교통도시이면서 곡창지대로 유명한 곳이다. 나를 여기까지 있게 한 그곳에서 이미 돌아가셨을 ‘어머니!’를 목 놓아 불러보고 싶다. 그리고 노래도 한 곡 뽑아보고 싶다.” 그러면서 전국노래자랑 예심에서 가장 많이 불리고 있는 그의 애창곡 ‘내 나이가 어때서’를 흥얼거렸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그의 봄날은 이제 시작되고 있는 듯했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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