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 ‘역사’ 따로 경제 따로… 힘받는 정경분리론 기사의 사진
한·일 관계에서 과거사는 블랙홀과 같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과 등 문제가 불거지면 모든 분야에서 관계가 경색된다.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양국 관계가 나빠지면서 교역규모가 축소됐다. 대화와 협력이 중단된 가운데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나기 위해 일본이 엔저 정책을 펴면서 한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해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았지만 양국의 수출입 규모는 3년 연속 줄어들고 있다. 12일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으로의 수출액은 322억4784만 달러로 전년보다 7% 감소했다. 2013년과 2012년에도 각각 10.7%, 2.2% 줄었다. 수입도 마찬가지로 하향세다. 신승관 국제무역원 동향분석실장은 “엔저에 한·일 관계까지 경색되면서 한·일 교역규모가 3년째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일 경제협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화스와프 역시 감소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때 700억 달러까지 확대됐지만 100억 달러 규모로 축소됐다. 이 금액은 오는 23일 만기가 도래해 기한 연장 여부를 놓고 양국 간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이다.

2012년 10월엔 이명박 전 대통령 독도 방문에 반발한 일본 정치인들의 잇단 발언으로, 2013년에도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위안부 관련 망언으로 각각 통화스와프 계약이 연장되지 않았다. 정부는 “양국 합의에 따라 내려진 결정으로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악화된 국민감정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양국 관계가 계속 꼬이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경분리론’을 제안하고 나섰다.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서 최 부총리는 일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에게 “정경분리에 입각해 정치는 정치인이, 경제는 경제인이 하자”며 정경분리 원칙 하에 경제협력을 모색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에 빠져들었던 일본은 디플레이션의 수렁에서 탈출하기 위해 주변 국가를 고려하지 않고 돈 풀기에 나서고 있다. 계속된 양적완화에 2012년 초 100엔당 1500원대였던 환율은 현재 900원대로 떨어졌다. 이러한 근린 궁핍화정책(다른 국가의 경제를 궁핍하게 만들면서 자국의 경기 회복을 꾀하고자 하는 정책)에 한국 기업들은 울상이다. 세계시장에서 일본과 수출경쟁을 하고 있는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동차, 선박, 반도체 등 한국과 일본은 주요 수출품목이 비슷하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4분기 지역경제보고서에서 “엔화 약세가 장기화하면 대일 수출 비중이 높거나 일본 기업과의 경합도가 높은 자동차 등의 업종은 물론 국내 기업과 납품관계에 있는 중소부품업체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 경쟁력 약화와 내수시장 침체로 한국 역시 디플레이션 우려를 안고 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3%를 기록했고, 1월엔 0.8%로 떨어졌다. 한은이 지난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재준 연구위원은 ‘일본의 1990년대 통화정책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성장세 둔화와 인플레이션 하락이 상당기간 지속됨에 따라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최 부총리는 최근 구조개혁을 강조하며 “한국경제가 장기 저성장 저물가라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갈 우려가 있다”며 공공·노동·교육·금융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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