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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작가 양혜규, 강하면서도 약한 존재를 얘기한다

5년 만의 국내 개인전 삼성미술관 리움서 열어

설치작가 양혜규, 강하면서도 약한  존재를 얘기한다 기사의 사진
블라인드 설치작품 ‘성채’. 거대한 구조물이면서도 블라인드로 만들어 안에서도 밖이 보이고, 틈새로 조명이 비치는 등 닫혀 있지 않고 열려 있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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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설명이 끝난 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해달라는 기자들의 제안을 가볍게 물리쳤다. 대신 작품 얘기를 더 하자고 했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설치작가 양혜규(44)가 돌아왔다. 5년 만의 국내 개인전. 그것도 서울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다. 이곳에서 국내 생존 작가 개인전이 열린 건 2012년 서도호 전(展) 이후 두 번째다. 그의 까칠함은 자신의 신작 실험에 대한 부담감도 작용한 듯 했다. 최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질문에 대해 오래, 정성 들여 설명하려 했다.

35점의 전시 작품은 ‘서울근성’(2010)을 제외하곤 처음 선뵈는 것들이다. 해외 전시에 나온 것도 있지만 이런 작품도 국내 소개는 처음이다. 양혜규의 ‘만용’을 보여주는 ‘창고 피스’(2004)가 그런 예다. 화가에게 작품은 팔리지 않은 이상 짐이 된다. 독일 베를린을 무대로 뛰고 있는 그에게는 더욱 그렇다. 궁여지책으로 운송업체 포장 그대로의 작품 23점을 널빤지 위에 올려 신작이라고 내놨다. 베를린의 단골화랑은 그런 실험을 받아줬다. 또 외국의 소장가가 사주기까지 했으니 그 발칙한 도전은 인정을 받은 셈이 됐다.

2006년 폐가를 활용한 설치작품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이후 승승장구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2009), 독일 카셀 도큐멘타(2012), 스위스 아트바젤(2014)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아트페어에 초대됐다. 그런 양혜규도 ‘코끼리를 쏘다 코끼리를 생각하다’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선 긴장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한편으로 자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떨린다. 강하면서도 연약한 존재가 코끼리 아니냐”며 웃었다.

시대적인 담론을 문학적, 역사적으로 추상화하는 작품을 선보였던 그가 쓴 재료는 블라인드, 구슬 등이었다. 이번엔 인조 짚이다. 토속적인 재료의 건축적 구조물이 설치된 전시장은 민속박물관을 연상시킨다. ‘중간 유형’이라는 이 작품은 고대 마야의 피라미드, 인도네시아 불교 유적 보로부두르, 러시아의 이슬람 사원 라라 툴판을 참조한 구조물 외에 중국의 신부, 삼족의 토템 등 인체를 연상시키는 조각이 포함됐다.

그는 “1년 전 추운 겨울에 일본의 한 지방을 갔다가 거대한 나무 전체를 짚으로 감싼 걸 봤다. 마치 거대한 구조물로 보였다. 현대에도 원시적인 재료와 손기술이 여전히 유용하게 사용되는 걸 보고 놀랐다”고 설명했다. 짚이 주는 익숙함, 그러면서 이국적 구조물이 주는 낯섦을 동시에 채택했다. 시선이 한국 너머 세계로 향해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글로벌 작가라는 자신감이랄까.

‘신호양호자’는 보안 무늬가 인쇄된 편지봉투 조각을 콜라주한 작품인데, 그 앞에 1970, 80년대 복덕방에서나 보던 나무뿌리 공예를 토템 마냥 설치했다. 정보유출로부터 개인정보를 지켜주는 수호자인 셈이다. 현대인의 불안, 원시에의 기댐을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 역시 코끼리의 강함과 연약함의 속성을 동시에 가졌다.

블라인드 소재를 스케일에서 확장시켜 해외에서 전시했던 ‘성채’(2011·오스트리아 브레겐츠미술관), 방울을 이용해 독일 바우하우스의 무대연출가 오스카 슐레머의 작품을 오마주한 ‘상자에 가둔 발레’(2013·노르웨이 베르겐미술관)도 국내 관객에게 처음 인사한다. 작품 안에서 걷거나, 바퀴가 달린 작품을 밀어볼 수 있는 즐거운 작품들이다.

전시방식은 어지럽다. 거대한 전시장에 작품들이 편집의 묘미 없이 흩어져 있다. 태현선 수석 큐레이터는 “작가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앞서 서도호의 전시는 리움 전시 사상 처음으로 10만 관객을 돌파하는 대중성을 과시했다. 분명한 구획을 좋아하는 한국 관객에게 양혜규의 시도가 먹힐지는 미지수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관람료는 일반 7000원, 초중고생 4000원이다(02-2014-6901).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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