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목사의 신앙상담] 일천번제, 성경적으로 필요한지…

일천번이란 숫자는 별 의미 없어 ‘나를 드리는 산제사’ 마음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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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솔로몬이 드렸던 일천번제를 현대교회에서는 짐승이 아닌 헌금으로 번호를 정해 일천번제라는 이름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성경적인지,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A : 솔로몬 왕이 드린 일천번제 이야기는 열왕기상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왕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솔로몬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묶어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수많은 제사들이 구약에 나옵니다만 일천번제를 드린 사람은 솔로몬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일천번 번제를 드린 후 받은 응답은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왕상 3:12∼13). 그리고 그 축복에는 단서가 붙어있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였습니다(왕상 3:14). 하나님과의 약속은 지켜야 하고 받은 축복은 바르게 관리해야 된다는 단서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관리에 실패했습니다. 부와 권력, 영화와 인기를 거머쥔 솔로몬은 그것 때문에 실패한 왕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왕상 11:2)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11:4)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11:9)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11:11)

우린 여기서 성공과 실패의 조건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축복의 원인이긴 했지만 신앙관리의 부실로 실패자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일천번이라는 숫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받은바 사랑과 축복에 대한 감격과 감사로 드린다면 문제될게 없습니다. 제 경우 99년부터 일천번제를 시작했습니다. 곧 오천번제를 넘기게 됩니다.

번제라는 용어대신 다른 용어를 사용해도 상관없습니다.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등의 주된 제물은 짐승이었지만 우리는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일천번제를 고집하거나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일천번제를 구약적 발상이라며 부정하거나 반대할 이유도 없습니다. 감사와 드림이 일천번으로 끝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가장 귀한 제물은 나를 드리는 산제사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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