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성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언제까지 안전한 곳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기사의 사진
불환빈이환불균(不患貧而患不均). ‘논어’ 계씨편(季氏篇)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의 말처럼 우리가 “걱정할 일은 가난이 아니라 불공평(不均)”이다. 3주 전 스위스 ‘다보스 포럼’은 급증하는 극단주의와 악화하는 빈부격차에 주목은 했다지만 성과는 없이 폐막했다. 지금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불평등은 바로 빈부격차다. 공자 이래 계속 악화의 길을 걸어온 빈부의 갈등이 내년에는 더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든다. 세계 1%의 부자들이 세계의 부 50%를 차지하는 해가 될 것이라니 말이다.

1% 부자들이 가진 재산을 합치면 99%가 가진 재산을 능가하는 시점이 내년이라고 국제 구호단체 옥스팜(Oxfam)은 예언한다. 현재 국가별로 세계 1%의 부자 속에 드는 인구수는 다음과 같다. ①미국 1800만명 ②일본 404만명 ③프랑스 352만명 ④영국 290만명 ⑤독일 275만명…, 그리고 한국 45만명 등 전체 4700만명.

그나마 세계 1% 부자는 38개국에만 있지 나머지 거의 200개 국가에는 아예 그만한 부자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극심한 빈부격차가 오늘날 세계의 가장 심각한 문제란 것을 우리 모두 느끼게 된다. 특히 오늘의 세계는 19세기와는 전혀 달라서, 어느 나라나 모두 다문화 국가로 변모하는 중이다. 20세기까지는 세계의 국가 구성이 민족 중심이었다면 오늘 세상은 더 이상 민족이 중심은 아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얼마나 많은 이민족이 함께 어울리고 있는가. 지난 시대가 민족 중심의 시대여서 민족 모순, 즉 억압받는 민족의 해방을 위해 젊은이들이 피를 흘린 일이 많았다면 이제는 빈부의 극심한 차이에서 고뇌하는 젊은이들이 그 모순의 극복을 위해 떨쳐일어나기가 쉽다.

조심스럽게 걱정하는 일은 지금 세계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슬람국가(IS)’에 세계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일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 얻기도 어렵고, 부익부빈익빈의 세상이 더 이상 희망 없다고 판단한 젊은이들은 극단적 수단으로 이 모순을 해결해 보려고 나설 것도 같으니 말이다.

원래 르네상스 등을 거치며 근대사회를 건설하기 시작한 서양은 1789년의 프랑스 혁명처럼 그 이상으로 자유, 평등, 우애를 내세워 혁명의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났다”며 대영제국에서의 독립을 선언한 미국의 독립운동 같은 경우도 있었다. 이들 모두가 그 직전 유럽 사상가들이 다듬어낸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등장한 선언일 뿐이다. 이상론에 그치는 허울 좋은 선언이었다.

실제로 평등사회로 가는 길은 험난, 그것이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평등을 헤쳐나가기 위해 피를 흘렸던가. 고려 신종 원년(1198) 5월 ‘고려사’를 보면 당시 실권자 최충헌의 종 만적(萬積)은 “장상이란 종자가 따로 있나?(將相 寧有種乎)”라며 반란의 앞장을 섰다가 강물에 처박혀 죽는 신세가 된 일도 있다. 로마의 스팔타쿠스보다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평등을 향한 발버둥은 마찬가지였다.

다보스 포럼에 맞춰 제출한 옥스팜 보고서는 제목을 ‘부(富): 모두 가진 자가 더 가지겠다는(Wealth: Having It All and Wanting More)’이라 붙이고 있다. 아주 그럴싸한 제목이다. 1700대의 개인 전용 제트기가 다보스로 향했다는 CNN의 보도를 보며 다보스가 ‘가진 자들의 잔치’에 불과하구나 생각하는 것은 나 혼자만일까?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헌법 제11조)고 우리 헌법도 선언은 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언제까지 안전한 곳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더 공평한 세상을 만들어 보다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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