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만 정규직을 말하다-비정규직 3인 잿빛 미래] 정규직 징검다리?  비정규직은 ‘늪’이다 기사의 사진
제대로 된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가기 위한 가교 역할이 돼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은 가교가 아닌 ‘늪’이다. 그들이 비정규직 일자리를 거쳐 정규직이 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렇듯 비정상적으로 낮은 처우를 받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600만명이 넘는다. 국민일보는 16일 늪에 빠진 청년 3명을 만났다.

◇“계약직으로 시작한 사회생활을 후회한다”=나(35)는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졸업 후 6년째 비정규직이다.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남들보다 졸업이 늦어졌는데 취업 문턱은 그만큼 높아져 있었다. 번번이 구직에 실패하던 내게 유럽 해외 법인에서 일할 신입사원을 모집한다는 한 대기업의 채용 공고가 눈에 띄었다. 1년 계약직이었지만 외국에 나가 사는 해외 채용직은 대체할 인력이 많지 않아 계약 연장이 잘 된다는 얘기에 용기를 냈다. 하지만 당시 결정을 나는 지금 후회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나빠진 경기에 계약직들이 대거 정리됐다. 2012년 쫓겨나듯 한국에 돌아왔지만 서른 넘은 나이, 1년 계약직 경력으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형마트 물품 정리를 비롯해 길고 짧은 아르바이트를 수없이 했다. 지금도 하루 10시간씩 일하며 열심히 살고 있지만 비정규직 신세에 결혼은 꿈도 못 꾼다.

◇“특근 안 했다고 청소만 하래요”=나(31·여)는 인천의 한 휴대전화 케이스 제작 회사에서 파견근로자로 일하다가 두 달 전 해고됐다. 회사에서 나를 포함해 20명 정도를 부르더니 일감이 없다며 다음날부터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 회사에서 2년8개월 일했지만 한순간에 직장을 잃었다. 퇴직금도 없었다. 사실상 불법 파견이었다. 제조업체는 6개월 넘게 파견근로자를 쓸 수 없다. 회사는 편법으로 6개월마다 파견 업체를 바꿔가며 계약하게 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날의 반복이었다. 야근과 주말 특근은 사실상 강제였다. 이를 거부하면 다음주 월요일 일을 주지 않고 청소만 시켰다. ‘위’에서 현장 해고 명단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올 때면 야근, 특근에 빠진 사람이 1순위에 올랐다. 정규직인 조장이 만드는 ‘살생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정규직은 임신도 못 하나요?”=나(32·여)는 지난해까지 학교 비정규직이었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2009년 9월부터 영어회화 전문 강사로 일해 왔다. 지난해 8월, 출산을 한 달 앞두고 출산·육아휴직을 신청했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이 일이 그나마 나은 이유가 출산·육아휴직이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학교는 흔쾌히 휴가를 갔다 오라고 했다. 그런데 4개월 후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이번 계약 종료 후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해고 통보였다. 담당 부장은 비정규직 육아휴직자가 부담이라고 했다. 자녀가 4명인 그 부장은 각각 최대 3년까지 휴직이 가능해 12년이나 휴직했던 사람이다.

세종=윤성민 기자, 조민영 기자

wood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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