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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하응백] 서울팔경의 꿈

[청사초롱-하응백] 서울팔경의 꿈 기사의 사진
조선 왕조의 설계자라 불리는 삼봉 정도전은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1392년 조선이 개국하자 정도전은 조선 왕조의 이념적 기틀을 다지는 ‘조선경국전’을 집필하고 한양 천도의 총 책임자로 수도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현재의 경복궁 자리를 정하고 궁성과 사대문 그리고 한양 5부 52방의 이름도 지었다. 요즘 말로 하면 ‘종로’구와 같은 구의 이름을 짓고 동네 이름까지 모두 지은 것이다.

이런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이 조선이 개국한 지 7년 되는 1398년이다. 불탄 숭례문 하나 짓는데 현대에도 몇 년이 걸리고, 그럼에도 부실 논란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정도전이 주도한 한양 신도시 사업은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단기간에 완성한 대단한 역사(役事)였다.

한양 건설에 대한 열정 높았던 정도전

1398년 4월 26일 조선왕조실록에는 “좌정승 조준과 우정승 김사형에게 신도팔경(新都八景)의 병풍 한 면씩을 주었다. 봉화백(奉化伯) 정도전이 팔경시(八景詩)를 지어 바쳤는데, 첫째는 기전의 산하였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정도전이 ‘신도팔경’이란 시를 지었는데, 이는 한성팔경 혹은 서울팔경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이 시에 등장하는 당시의 서울팔경은 이렇다.

첫째는 기전산하(畿甸山河). 서울이 위치한 지역의 산하(山河)가 아름답다는 말이다. 둘째는 도성궁원(都城宮苑). 새롭게 지은 경복궁을 비롯한 도성의 궁전과 정원이 웅장하고 아름답다는 말이다. 셋째는 열서성공(列署星拱). 새롭게 지은 도성의 관청이 마치 북두칠성처럼 빛난다는 의미다. 넷째는 제방기포(諸坊碁布). 5방에 새로 들어선 민간의 여염집들에서 올라오는 밥 짓은 연기가 평화롭기 그지없다는 뜻이다.

다섯째는 동문교장(東門敎場). 동대문 밖 군사 훈련장의 군세(軍勢)가 위엄이 있다는 것. 여섯째는 서강조박(西江漕泊). 서강(지금의 마포) 지역으로 각 지방에서 물자와 곡식들이 배로 들어와 도성 창고에 곡식이 썩을 정도라는 것. 일곱째는 남도행인(南渡行人). 남쪽 노량진 부근에 유동인구가 많아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것. 마지막으로 여덟째는 북교목마(北郊牧馬). 서울 북쪽 말 목장에 말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이 팔경시를 보면 정도전을 비롯한 조선 개국파들의 정치와 서울 건설에 대한 대단한 자신감과 열정을 읽을 수 있다. 또한 매우 정밀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담고 있음도 알 수 있다. ‘기전산하’의 경우 왜 하필 한양을 수도로 정했느냐고 하는 데 대한 답이다.

소신 있고 꿈이 큰 사람이 정치해야

도성궁원과 열서성공과 제방기포는 수도 건설의 완성을 선언한 구절이다. 궁과 관청과 여염집을 다 지었으니 수도 건설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니 사람과 물자가 넘쳐난다(남도행인, 서강조박). 그뿐만이 아니다. 강력한 군사력도 과시한다(동문교장, 북교목마). 당시 명나라의 압박에 대해 정도전은 요동 정벌을 추진하면서 사병 혁파를 단행하려 했던 시점이었다.

이 시를 짓고 불과 넉 달이 지나지 않아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기습을 받아 죽임을 당하지만, 정도전의 국가 건설에 대한 이상(理想)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는 팔경시 서강조박에서 “여보게 썩어가는 창고의 곡식 보소(淸看紅腐千倉), 정치란 의식의 풍족에 있네(爲政在於足食)”라고 말했다. 정치의 핵심은 족식(足食)에 있다는 것. 그런데 역성혁명을 통해 백성들의 굶주림을 면하게 했다는 그 자신감. 그 자신감의 표현이 바로 정도전의 팔경시였다.

무릇 정치란 그 정도의 꿈이 있는 사람이 해야, 백성이 편안해진다.

하응백 문학평론가·휴먼앤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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