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재선충의 공습-르포] 잔해 처리 엉터리… 탈출한 재선충, 주변 쑥대밭 잠식 기사의 사진
지난 10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대련리 야산에서 한 인부가 재선충에 감염돼 말라 죽은 소나무를 전기톱으로 베고 있다. 포항은 재선충 ‘극심’ 지역이다. 포항=이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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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경북 경주의 한 사찰 뒷산. 초록색 방수포를 덮어쓴 ‘소나무묘’ 10여개가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었다. 방수포 안에 든 것은 재선충에 죽어 전기톱으로 잘린 소나무 두 그루였다. 주변에는 치우다 만 소나무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여기저기 나뒹구는 나무토막과 어른 팔뚝만한 가지들엔 곰팡이가 잔뜩 피었다. 직경 1㎝ 안팎의 구멍도 곳곳에 뚫려 있다. 동행한 재선충 전문가 A씨(정부 관련 업무를 하고 있어 익명을 요청했다)는 “솔수염하늘소가 재선충과 함께 뚫고 나온 탈출공(孔)”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제때 제거되지 않은 소나무 잔해에서 ‘구멍을 뚫고 탈출한’ 재선충이 인근 소나무숲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소나무묘 뒤로 보이는 솔숲은 절반 이상이 단풍이라도 든 듯 황적색으로 변했다. 멀리 보이는 능선도 군데군데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다. 이곳 사찰 뒷산에서 시작된 재선충이 인근 야산을 짓밟으며 ‘진군’하는 듯한 모양새다. 소나무숲 한가운데였지만 청량한 솔향기는 어디서도 맡을 수 없었다.



‘소나무 공동묘지’ 된 세계문화유산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는 경주 어디에서든 손쉽게 볼 수 있었다. 자동차로 도로를 달리면 초록색이나 주황색 방수포의 소나무묘가 들어찬 야산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단아한 한옥과 독특한 소나무 경관이 어우러져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곳 한옥을 품은 설창산 일대는 재선충에 죽어가는 소나무로 가득했다. 죽은 소나무 사이로 소나무묘가 흉측하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특별관리를 받는 곳인데도 재선충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했다. 양동마을 일대를 둘러본 A씨는 “10년 가까이 재선충병 피해현장을 다녔지만 이렇게 엉망인 곳은 없었다. 산림 당국과 경주시가 후손에 큰 죄를 짓고 있다”며 혀를 찼다.

그는 먼저 도로변 소나무묘를 지적했다. 재선충 방제 매뉴얼에는 도로변 50m 이내에서 죽은 소나무는 수집해 파쇄·소각토록 돼 있다. 훈증 처리 후 소나무묘를 만드는 건 깊은 산속처럼 수집이 어려운 지역으로 제한된다. 경관을 해친다는 점도 있지만 훈증 방제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방수포가 훼손되거나 비에 소나무묘가 쓸려 내려가는 등 위험성이 있다. 또 재선충병 소나무는 바짝 말라 죽기 때문에 산불이 나면 소나무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된다. 소나무가 죽어 불안정해진 지반에 이렇게 나무들을 쌓아놓으면 산사태 위험도 커진다. 양동마을에서 설창산으로 오르는 도로변은 이런 소나무묘가 즐비했다.



주먹구구 방제…통제되지 않는 현장

설창산 산길을 벗어나 솔숲을 걸어 오르니 방수포가 찢어져 잔해가 드러난 소나무묘가 나타났다. 소나무 잔해와 훈증 처리에 사용된 약병이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다. 사진을 찍어 경주시 재선충 담당자에게 보여주자 “통상 훈증 6개월 뒤에는 유충 등이 죽은 걸로 간주한다”면서도 “언제 훼손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언제 찢어졌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 소나무묘가 재선충의 숙주 역할을 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도로변에 소나무묘를 만들어놓은 이유에 대해서는 “회수해 소각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훈증이 끝난 뒤 소나무묘 위치를 파악해 회수하고 처리하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훈증이 고비용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훈증 처리가 방제작업의 주를 이루다보니 비가 많이 오면 물이 흘러가는 계곡에까지 소나무묘가 들어찼다. 움푹 파인 계곡 양옆으로 비스듬하게 줄 세워 소나무묘를 만들어놓은 곳도 있었다. 경주시 관계자는 “계곡지역에 있는 재선충병 소나무를 수집하는 작업은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발생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방치된 소나무 잔해에서 발견된 ‘탈출공’은 방제작업이 얼마나 부실하게 이뤄졌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이런 소나무 잔해는 인근 민가에서도 발견됐다. 양동마을 주변 민가 앞에는 땔감으로 모아놓은 소나무 가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 위반이다. 방제 당국이 모두 수거해 폐기해야 하지만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는 소나무 멸종 못 막는다”

부실 방제는 인근 포항이나 창원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선충은 이미 포항시를 집어 삼킨 뒤 북쪽 영덕군을 위협하고 있다. 영덕은 국내 최대 송이버섯 생산지로 국내산 송이의 40%가량을 출하하는 곳이다. 송이버섯은 굽은 소나무 아래에서 자라기 때문에 소나무가 없어지면 송이버섯도 사라진다. 현재 영덕에는 재선충이 번지고 있다. 포항처럼 ‘극심’ 지역으로 분류되진 않았지만 서서히 잠식해가는 중이어서 송이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포항의 북쪽 끝 화진리에서 재선충이 영덕으로 퍼진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곳도 경주처럼 방제 매뉴얼이 무시되고 있었다. 도로변에는 소나무묘가 즐비했고 군데군데 찢어진 방수포도 있었다. 심지어 재선충병 소나무임을 표시하는 노란 끈이 묶인 나무들이 통째로 굴러다니기도 했다. 높이 5㎝ 그루터기만 남기고 잘라야 한다는 규정도 무용지물이었다. 10∼30㎝ 높이의 소나무 그루터기들이 다수 확인됐다.

현장 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듯했다. 포항에선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에 노란 끈과 붉은 페인트가 이중으로 표시돼 있었다. 원래 노란 끈만 묶여 있었는데 현장 작업자들이 까다로운 위치에 묶인 끈을 풀어 엉뚱한 소나무에 묶는 일이 잦자 시 당국이 붉은 페인트로 다시 칠한 것이다.

그나마 포항은 다른 지방자치단체보다 재선충 방제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창원시 북면의 과수원 뒷산에선 소나무묘 옆에 아무런 표식도 없이 말라죽은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오래전 재선충에 감염돼 죽은 소나무부터 지난해 발병한 소나무까지 반경 15m 안에 모여 있었다.

방제 현장을 둘러본 A씨는 “산림청이 2017년까지 재선충을 박멸하겠다고 말하는데 방제 현장의 실태를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이런 식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소나무가 전멸하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주·포항·창원=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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