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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손수호] 광장은 그냥 빈자리가 아닌데…

[청사초롱-손수호] 광장은 그냥 빈자리가 아닌데… 기사의 사진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우물가’는 동네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객쩍은 만남을 소재로 삼고 있다. 물 한 바가지 얻어 마시는 것을 핑계로 여인들에게 수작 거는 사내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헌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 긷던 세 여인은 남자를 외면하면서도 영 싫은 표정이 아니다. 그 이유는 장소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우물가는 남녀유별에서 살짝 벗어나는 사회적 공간이었기에 이 무례한 사내를 내치지 않은 것이다.

과거의 우물가를 현대 도시에 적용하면 어디가 될까. 아마 광장이나 공원이 대신할 것이다. 공원의 벤치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누구도 나가라 소리치지 않으며, 광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도 어느 정도 받아준다. 애당초 휴식과 더불어 만남을 매개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공간은 많을수록 좋다. 집이나 사무실 외에 별다른 개인적 영역을 갖지 못하는 도시인들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에어포켓이나 다름없다. 덴마크의 저명한 도시학자 얀 겔은 옥외활동이 활발한 곳이 가치 있는 도시이며, 공공장소에서의 만남이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과밀화된 도시에서 공적 공간이 중요한데도 우리의 광장문화는 많이 왜곡됐다. 광장을 그저 넓은 공간쯤으로 착각한 결과다. 여의도에 처음 만든 5·16광장이 대표적이다. 허허벌판에 네모지게 아스팔트 깔아놓고 관제 쇼와 대규모 행사를 펼친 곳이 광장의 기본인 양 오해를 가져왔다. 그러나 광장의 정의는 넓은 장소가 아니라 ‘건물의 벽면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는 옥외 공간’을 일컫는다. 당연히 주변에 문화시설을 거느린다. 집으로 치면 거실이고, 마을로 치면 너른 마당이다. 거기서 사람들이 만나고, 대화하고, 교류하고, 논다. 이런 정의를 모르니 멀쩡한 광장은 없애고, 없는 광장을 새로 만드는 행정의 난맥이 반복되는 것이다.

대형 쇼핑센터의 들러리로 전락한 驛舍

쓸 만한 광장을 없앤 대표적인 경우로 전국의 역 광장이 있다. 수많은 사람의 애환이 묻어 있는 이 유구한 공간은 어느새 민간자본의 쇼핑센터로 전락했다. 남은 옥외 공간은 예외 없이 실내화(室內化) 수순을 밟거나 자동차 진입로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다보니 수도의 관문인 서울역과 용산역, 청량리역 앞은 광장이 아니라 마당 수준으로 쪼그라들고 말았다. 공공 영역의 사유화가 거칠게 진행된 현장이 역사(驛舍)였던 것이다.

공공 공간에 활력 돌아야 도시가 산다

이렇게 광장이 야금야금 잠식되는 데도 시민사회가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것은 광화문광장이나 서울광장, 청계광장 같은 블록버스터에 현혹된 탓이다. 그렇게 새롭게 조성된 광장이 달라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장소만 여의도에서 도심으로 옮겼지 활력 없기는 매한가지다. 관광객들의 포토존 역할이 끝난 밤이면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시민들의 활동과 연계되지 않기에 ‘로스트 스페이스(lost space)’가 되는 것이다.

실내화가 진행 중인 또 다른 영역은 학교 운동장이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 주변을 지나다 놀란 일이 한두 번 아니다. 넓지도 않은 운동장에 커다란 강당이 들어차 있어서다. 실내 공간의 실용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아이들이 늘 뛰어노는 운동장과 행사 때나 쓰는 강당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역 광장이 사라지고 학교 운동장이 실내 공간으로 편입되는 현상을 보면서 사람들의 생각과 활동도 덩달아 왜소화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화초는 실내에서 자랄 수 있어도 큰 나무는 햇볕과 바람과 비와 함께하는 바깥에서만 자라는 법이다. 개인의 인격이 무럭무럭 자라고, 공동체 문화가 술 익는 소리처럼 들리는 곳. 새봄에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는 공적 공간이 생기를 찾을 때 도시도 아름다운 문화의 꽃을 피워낼 것이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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