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재선충의 공습-르포] 경상도는 거대한 ‘소나무 무덤’… 백두대간 타고 북상 기사의 사진
재선충이 우리 국토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남해안을 따라 경남 거제에서 전남 순천까지 '재선충 벨트'가 형성됐다. 백두대간을 타고 북상 중이다.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은 재선충에 포위된 상태고, 이미 휩쓸고 간 경남북은 거대한 '소나무 공동묘지'나 다름없었다. 2011년 46개 시·군·구였던 재선충병 피해지역은 현재 74곳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만 소나무 218만 그루가 고사(枯死)했다. 올해도 109만 그루가 죽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4∼6일 경남 김해와 밀양을 중심으로 부챗살처럼 뻗어나가는 재선충 루트를 돌아봤다.

문경·괴산 뚫리면 남북 관통

김해와 밀양은 이미 초토화됐다. 훈증 처리 후 녹색 방수포를 덮어쓴 ‘소나무묘’들이 도로변 야산에 가득했다. 인적이 뜸한 야산이나 주택가, 학교 뒷산에도 말라 죽은 소나무가 즐비했다. 김해 외곽의 한 주택가 뒷산은 이미 소나무 씨가 말랐다. 주민 오모(47)씨는 “산 속으로 들어가면 재선충병에 죽은 소나무가 더 많다”고 했다.

재선충은 김해와 밀양을 벗어나 세 갈래로 북상하고 있다. 첫 번째 루트는 동해안이다. 경북 경주와 포항을 싹쓸이하고 국내 최대 송이버섯 생산지인 영덕군으로 넘어간 상태다. 소나무가 죽으면 송이버섯도 자랄 수 없다. 역시 송이버섯으로 유명한 청송·영양·봉화군에도 비상이 걸렸다. 영덕 위로는 금강송의 고향인 경북 울진군, 강원도 삼척·태백시가 이어진다. 산림청 관계자는 “영덕이 마지막 방어선”이라며 “(금강송 군락지로) 올라가면 피해 규모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두 번째 루트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재선충은 이 고속도로를 타고 질주하듯 주변 지역을 하나둘씩 접수하고 있다. 2011년에는 경북 칠곡과 구미에 머물렀는데, 이후 성주(2012년) 상주(2014년) 김천(2015년)이 차례로 뚫렸다. 현재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을 위협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에서 남하하고 있는 재선충이 충북 충주까지 내려온 터여서 문경과 괴산 중 한 곳이라도 재선충병이 발생하면 남북으로 국토가 관통된다. 재선충 전문가들은 “문경·괴산까지 무너지면 방제가 훨씬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감염 지역을 포위해 좁혀들어가는 기존 방제 방식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포위된 지리산

남해안을 따라 서진(西進)하는 루트가 세 번째다. 거제는 이미 재선충 ‘극심’ 지역으로 분류됐다. ‘통영→고성→진주→하동→광양→여수→순천’으로 번지면서 길게 재선충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김해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창원을 거쳐 진주 방면으로 달리다보면 소나무 공동묘지를 지나는 느낌마저 든다. 진주 진입을 알리는 ‘좋은 도시 편한 진주’ 표지판이 설치된 야산에도 소나무묘가 흉물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동에 들어서면 이런 모습이 뜸해지지만 남쪽 바닷가로 이동하면 재선충병 소나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동군 관계자는 “바닷가에 인접한 하동청소년수련원 일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며 “다행히 화개장터로 유명한 화개면이나 섬진강과 어우러진 ‘송림’까지는 옮겨 붙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양·여수 등 전남 해안지역에 이어 내륙인 전북 임실과 순창까지 재선충에 감염됐다. 이에 지리산권역(남원 구례 산청 함양)은 사방으로 재선충에 포위된 상태다. 특히 임실·순창·하동과 닿아 있는 남원은 재선충을 옮기는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가 동시에 분포하고 있다. 순천·광양·하동과 붙어 있는 구례도 위험 지역이다. 지리산의 명소인 노고단·피아골·뱀사골 등이 재선충의 공습에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소나무 안전지대는 없다

재선충병은 멀리 떨어진 곳에 ‘공수부대’처럼 침투하기도 한다. 충남 보령과 태안이 이런 식으로 발병했다. 보령은 2012년 재선충이 처음 나타났다. 충청도의 첫 피해지역이었다. 반면 홍성·청양·부여·서천 등 주변 지역은 모두 무사했다. 당시 보령에서 가장 가까운 재선충 발생 지역은 경기도 용인과 전북 임실. 두 곳 모두 100㎞ 가까이 떨어져 있다.

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가 1년간 이동하는 거리는 3㎞ 정도다. 이 때문에 ‘인위적 이동’이 아니라면 재선충이 보령으로 넘어가기란 불가능했다. 인위적 이동이란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를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 확산시키는 걸 말한다.

확산 범위를 예측하기 어렵고 피해가 광범위해지기에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은 발병지역 소나무의 이동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보령에서 재선충이 발생한 것은 결국 법이 지켜지지 않았으며 단속 역시 부실했다는 걸 의미한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지난해 해송 숲으로 유명한 태안군 안면도에 재선충이 침입했다. 바로 옆 보령에서 건너온 것이다.

백두대간의 핵심 지역 중 하나인 강원도 정선과 경북 안동도 이런 식으로 발병했다. 올레길 등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는 제주도 역시 인위적 이동이 아니면 이유를 찾을 수 없다.

환경시민단체 ‘산과 자연의 친구 우이령사람들’ 이병천 회장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부실한 방제로 되돌리기 어려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이제 우리나라에 소나무 안전지대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해·밀양=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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