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만 정규직을 말하다] ‘정규직 과보호’ 논리보다 ‘차별 구조’ 대수술 필요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20∼30년을 부모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자력으로 공부하고 자신에게 투자해 온 청년들이 사회에 나와 길을 잃는다.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하고 단기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 등을 전전하는 청년들의 취업난은 연일 뉴스가 되고 있다. 평생직장에서 열심히 살아오다 덜컥 정년을 맞거나 정년이 채 안 됐음에도 회사에서 사실상 쫓겨난 50, 60대의 암울한 노후 역시 매일같이 접하는, 새롭지 않은 이야기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일도 해야 하는 여성들의 경력 단절, 재취업난 등도 마찬가지다. 현재 직장을 갖고 제법 괜찮은 ‘벌이’를 하고 있는 이들도 대부분 현재와 미래를 모두 불안해하며 자신들을 ‘미생(未生)’이라 부르고 있다. 대한민국 근로자들 대부분이 힘겹고 불안하고 암울해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필요성은 그래서 절실하다. 그런데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외치는 ‘구조개혁’이 우리 사회에서는 달갑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제를 인정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자는 외침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건, 외치는 내용이나 외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다.

◇노동시장 비용 절감이 구조개혁의 목표?=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정규직 과보호론’이었다. 이는 정규직들이 매우 많은 급여나 보상을 받고, 문제가 있어 해고하려 해도 ‘해고 비용’이 높아 더 이상 정규직을 뽑을 수 없다는 기업의 ‘비용 부담론’에 기초한다. 일부 과보호된 정규직 때문에 비용이 싸고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한국의 노동시장은 일부 대기업의 강한 노조를 가진 직장에서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이 그렇지 않은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2.5배에 이를 정도로 격차가 큰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정규직 과보호를 들고 나오면서 한국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논의의 초점이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문제로 기울게 됐다는 점이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센터소장은 최근 국민일보에 낸 기고에서 “현재 노동시장의 경쟁력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면서도 관심은 비용 절감에만 머물러 있다”며 “구조를 뒤흔드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많이 받는 이가 잘못됐으니 이를 더 내놓아야 한다는 식의 접근법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소장은 “임금체계 개편을 할 때 나이가 들면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가 나쁘다는 논리를 제시하기보다 하청업체 근로자는 같은 경력을 갖고도 적게 받는 차별을 개선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면 공감을 더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청년 인력을 신규로 얼마나 늘릴지 등을 약속해주는 식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금체계 개편은 산업별, 기업 규모별은 물론 한 회사 내에서도 직무에 따라 상황이 다른 만큼 노사 현장에서 개편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노총은 24일 성명을 내고 “직무 분석이나 직무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에 대한 공감대도 없이 정부가 직무 성과급 임금체계 개편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장기적이고 큰 틀의 ‘경제구조 개혁’ 함께 가야=3월 말까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대타협안을 내놓겠다는 ‘시한’을 정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과거 정부 주도적인 산업화의 산물인 한국 노동시장 문제를 개선하는 것은 시스템 전반을 손봐야 하는 매우 거시적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유독 심한 이중구조 문제만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하청 기업 간 큰 격차와 떼어놓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 지적이다. 비정규직 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현실적으로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 문제도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고용위기시대 사회적 대화의 전략적 모색’ 보고서에서 “한국 고용시장의 개선을 위해서는 임금정책 등뿐 아니라 일자리 최저 기준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들을 합리화하는 등의 산업정책도 병행돼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노사정위원회가 논의키로 한 3대 과제에는 노동이동성·임금체계 개편 외에 원·하청,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방안, 비정규직 고용규제 제도 개선이 포함돼 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본부장은 “구조개선 논의를 지금이라도 시작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지금도 늦은 편”이라면서 “그러나 이 사안을 마치 임금피크제 도입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 제도 하나 도입하는 것처럼 논의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현재 우리 임금체계나 근로시간 등의 개념은 모두 제조업 공장 근로자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기업들이 공장 상당 부분을 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로 돌리고 서비스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등 한국 경제산업 구조가 변한 만큼 임금체계나 근로형태, 근로기준법 등도 이에 맞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노사정위 특위 한 위원은 “정규직 과보호 문제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은 맞지만 마치 그게 논의의 전부인 것처럼 되니 노·사·정 간 합의를 이루기가 어렵다”면서 “선진국들의 사회적 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넓고 크게 보면서 논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 1200만 정규직을 말하다[기사 모두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