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사랑 없는 세상살이는 기구해 기사의 사진
“(1965년) 한·일회담할 때 군위안부 문제를 전면에 내놓지 않은 이유는 그때는 그분들이 겨우 고국에 돌아와서 배우자를 만나 애들 낳고 말없이 살 때였다. 그런데 이걸 끌어내서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 버렸다. 누구 발상인지는 모르지만, 가슴이 좀 아프다.” 한·일회담의 주역 김종필 전 총리가 지난 24일 고(故) 박영옥 여사 빈소에서 일본 정치인들의 조문을 받는 과정에서 한 얘기다.

日 페이스에 말린 한·일외교

3·1절을 하루 앞뒀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며 한·일 수교 50주년이다. 그런데 한·일 관계는 50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등으로 경색되어 있다. 1995년 당시 일본 무라야마 총리가 식민지 지배에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뜻을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조차도 무시한 아베 정권의 극우적 태도가 제일 원인이다.

‘인정은 반복되고 세상살이는 기구하다’(‘채근담’)라는 말이 있다. 세상살이가 그러할진대 국가와 국가 간이라고 다르겠는가. 소니를 삼성이 잡을 줄 일본이 어찌 알았겠는가. 1992년 한·중 수교 직후 유사 이래 ‘중화’를 ‘3류 짝퉁’이라고 놀리는 세상이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나 이 또한 잠깐 일 수 있다.

“…애 놓고 말없이 살 때였다”

이는 세상살이다. 이러한 기구함은 구한말 탐욕에 사로잡힌 위정자들이 일제 침략을 자초한 결과다. 그리고 그 고난은 고스란히 백성이 감당해야 했다. 국가가 백성을 지키지 못했다.

페르시아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주전 539년이다. 고레스는 대단히 너그러운 정책을 폈다. 그는 칙령을 발표해 유대인들로 하여금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자유를 주었다. 이른바 ‘고레스 칙령’이다. 유대인들은 고레스가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인 줄 알았다. 고레스의 인정에 대한 유대인들의 착각이었다. 고도의 통치술이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페르시아 통치 하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소위 사마리아인)과의 민족분단 이데올로기만 심화됐을 뿐이다.

3·1민족저항운동을 겪은 일본은 문화통치로 한반도를 다스리려 했다. 1920년대다. 그들의 인정에 이끌려 민족교회조차도 훼절했으며 ‘일본기독교’ 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리의 한·일 외교가 마치 고레스 칙령 때나 문화통치기를 보는 듯하다. 일본 페이스에 말린 꼴이다. 일본이 강경책으로 나오건, 유화책으로 나오건 우리 정부는 발끈할 뿐 미래지향적 세부사항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아베의 강경 주도권에 뒷북만 울린다.

일본 크리스천만이 사죄

인정은 사람의 본마음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부여한 선한 마음이다. 문제는 이 선함을 사탄이 꾀어 집단화의 마음을 만들어 내고 종내 그것이 일국의 국민성이 된다. 일본 선교사들은 사무라이의 지배와 군국주의 시대를 거친 일본인 마음속에 회개와 용서라는 개념이 자리 잡을 여지가 별로 없었다고 말한다. 책임과 의무만을 강조하는 수직적 구조는 부적응 구성원을 엄벌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본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수평적 사랑이 거하기 어렵다.

이웃 국가 간 인정은 민간의 몫이다. 지난해 10월 일한친선선교협력단 소속 목사 15명을 비롯해 수많은 일본 크리스천이 공식적으로 일제 침략과 위안부 문제를 사죄했다. 하나님 양심의 발로다. 일반 선량한 일본인도 사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만 엄벌이 두려워 ‘공식화’ 못할 뿐이다. 우리도 12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해 사랑을 전한다.

일본은 실재하는 이웃이다. 그 실재에 대해 국가는 이성적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가 감정만 앞세워 민간외교보다 못한 한·일 관계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의 전범을 섬기는 그들의 사탄 술책에 그때그때 목청만 높인다. 50년 전 소회를 밝힌 김종필의 말이 회자되는 건 슬픈 일이다.

전정희 선임기자(종교기획부)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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