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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김종헌] 덕수궁미술관 설계도의 가치… 1930년대 건축 기술 알려주는 자료

각 요소들 전체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청사초롱-김종헌] 덕수궁미술관 설계도의 가치… 1930년대 건축 기술 알려주는 자료 기사의 사진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머릿속엔 온통 덕수궁미술관에 대한 설계도면이 꽉 차 있었다. 덕수궁미술관 공사 현장에서 긴박하게 움직이며 각종 자재가 제대로 들어왔는지, 창호 크기는 맞는지, 마감에 붙일 돌 형태는 제대로 손질했는지, 또 들어온 자재에 흠은 없는지 등 도면을 보며 검토하고 있는 당시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도면들에는 공사 현장에서의 상황들을 일일이 체크했던 흔적들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었다.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덕수궁미술관 도면에 대한 2년간의 연구 작업을 통해 ‘덕수궁미술관 설계도’를 출간했다. 덕수궁미술관은 1936년 우리나라 최초로 처음부터 본격적인 근대 미술관으로서 설계된 건축물이다. 1938년 6월 5일 개관해 현재에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429장 도면과 일본 하마마쓰 도서관 소장의 217장 도면 그리고 각종 공사에 대한 내역과 공정표 등 관련 서류 25건을 전수 조사해 설계부터 준공에 이르는 과정을 소상히 밝혀내고 있다. 공사 현장에서 일본에 있는 설계사무소와 주고받은 엽서에 이르기까지. 지금처럼 통신수단이 발달하기 전에 가장 빠르게 또 효율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던 것은 엽서였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엽서에 직접 그림을 그려서 보낸 것이다. 마치 현재 스마트폰으로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 설계사무소와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이처럼 설계에서부터 공사 전체 과정이 광범위하게 밝혀진 경우는 없었다. 특히 이러한 방대한 도면 자료를 통해 지어진 덕수궁미술관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이들 도면을 통해 창호 상세와 바닥의 물매처리, 벽면 타일 붙이기 등 건축물을 구성하는 각 요소와 하나하나 비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덕수궁미술관의 외부 마감을 형성하는 돌 공사 도면은 실제 돌의 형태에 맞추어 1대 1 크기 그대로 그려놓고 있다. 현장에서 도면대로 돌 가공이 어려울 경우 도면에 바로 수정을 하여 공사 현장에서 일어나는 긴박감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통신이 발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상황과 설계도면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현재의 상황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1930년대 당시 건축이 갖고 있는 모든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덕수궁미술관 설계도’의 가치가 단지 이렇게 광범위하고 상세한 자료를 지니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석조전과 그 앞 정원의 관계를 고려해 배치와 형태가 고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석조전의 이오니아식 기둥과는 달리 코린토스식 기둥을 이용하여 석조전과의 차별화된 모습을 갖고 있다. 이 두 건물은 서로 다르면서도 이질적이지 않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본 원리는 3m의 기둥 간격과 3분할 입면 등 고전주의 건축이 갖는 비례체계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건물을 새로 지을 때 기존 건물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모범 답안과도 같다.

이와 함께 각각의 요소들은 전체 형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하고 있다. 모든 크기의 기준은 코린토스식 기둥의 반지름인 40㎝다. 자연스럽게 지름은 80㎝에 달하고 양쪽으로 15㎝씩 확장된 크기가 코린토스식 기둥을 받치는 주초(柱礎)의 크기 110㎝가 된다. 이 110㎝는 벽면의 창호 너비가 된다. 창문 높이는 기둥 높이 650㎝를 5로 나눈 벽면 돌의 130㎝ 모듈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덕수궁미술관에서의 치수는 각각의 요소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섬세하게 조율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덕수궁미술관 설계도를 보면서 이렇게 각 부분들이 섬세하게 조율된 사회를 꿈꾸는 것은 무리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헌(배재대 교수·배재학당역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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