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승한] 연해주의 고려인 기사의 사진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살고 있는 박 앙겔리나씨는 고려인 3세다. 스탈린에 의해 할아버지가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당해 그곳에서 태어났다. 1937년 연해주 각처에서 살던 고려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라즈돌노예역으로 끌려가 강제로 기차에 태워져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 버려졌다.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은 혹한과 굶주림, 풍토병을 견디지 못하고 이듬해 7000여명, 그 이듬해 4800여명이 사망했다. 생판 처음 보는 곳에서 살게 된 고려인들은 피땀 흘려 광야를 개간하는 천신만고 끝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고려인들은 또 수난을 겪었다. 2년 후 고려인 강제 이주에 대한 옐친 정부의 공식 사과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은 다시 연해주로 돌아오는 길이 열렸다. 박 앙겔리나씨는 2000년에 우수리스크로 왔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를 우즈베키스탄에 묻고 할아버지가 살았던 연해주로 온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월 18일 설을 하루 앞두고 우수리스크 외곽의 한 식당에서 만난 박씨는 남북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는 딸이 한국에 나가 살고 있다면서 하루 속히 통일이 돼 연해주까지 기찻길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러시아말과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남북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강제이주 수난의 후손들

그날 식당에서는 고려인들의 설날 경로잔치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한 고려인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할머니들 앞에는 정갈하게 차려진 한국 전통음식들이 놓였고 무대에서는 고려인 가수들이 노래와 춤으로 어르신들을 위로했다. 혹독한 시베리아땅에서도 민족 명절을 잊지 않고 고단한 삶을 서로 위로하는 고려인들의 모습에서 디아스포라 한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았다.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등 연해주에는 고려인이 약 5만명 살고 있다. 대부분 농사를 짓고, 경제적으로 좀 나은 사람들은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 연해주는 우리 선조(고조선·고구려·발해인)들이 오랫동안 호령했던 한민족의 땅이었다. 우수리스크에는 발해의 거대한 토성이 남아 있고 여기서 발굴된 유물은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역사관에 소장되어 있다. 역사관에는 유물 외에도 고려인의 연해주 이주 및 정착 역사,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사, 고려인 강제이주 및 연해주로의 재이주 기록 등이 진열되어 있다. 연해주는 일제에 대항해 독립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이자 해외 첫 임시정부가 수립된 곳이다. 그래서 현지 고려인들은 강제이주의 깊은 상처 속에서도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러나 이들은 연해주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자녀교육과 삶의 향상이다. 한동안 우리 정부가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였으나 지금은 미미한 상태다. 동북아평화연대 등 몇몇 민간단체가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한반도 통일운동의 자원

남북통일을 한민족의 대박으로 규정한 정부는 연해주와 고려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연해주는 남북통일과 한민족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고려인과 사할린 거주 한인들, 중국 조선족들의 왕래가 빈번한 특이한 곳이다. 우수리스크의 중국시장에는 한국말이 공통어로 사용될 정도다. 이 때문에 정치 경제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아주 많다.

정부는 고려인들의 아픈 상처를 보듬고 고국방문과 4, 5세들의 교육, 경제적 안정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연해주는 한민족이 시베리아를 관통해 유럽으로 뻗어가는 관문이다. 이 길을 잇는 사명을 연해주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이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이승한 종교국장 s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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