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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 백남준 제자이자 美 비디오아트 거장 빌 비올라 개인전

국제갤러리서 신작 7점 전시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 백남준 제자이자 美 비디오아트 거장 빌 비올라 개인전 기사의 사진
‘조우(The Encounter). 2012년 작. 19분 19초. 정반대의 인생을 살던 두 여인이 각자의 여행을 가던 중 어느 한 지점에서 아주 짧은 순간 마주하고 다시 각자의 여정을 걷는 장면을 담았다. 황량한 풍경의 공간에서 걷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두 여성을 통해 인간애와 함께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진다.국제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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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섯 살. 익사할 뻔한 경험을 했다. 가라앉으며 본 푸른 세상이 아름다워 구해주려는 삼촌을 밀쳐내기까지 했다. 이후 보이지 않는 뭔가 있다는 느낌을 갖고 살아왔다.

#2. 40대 초반. 부모를 잃었다. 동시에 아들을 얻었다. 삶과 죽음의 순환을 생각하게 됐다.

비디오아트의 거장인 미국 작가 빌 비올라(Bill Viola·64)의 작품 세계는 ‘느림의 미학’을 통해 보여주는 ‘영상 시(詩)’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존재하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형이상학적 질문과 싸워온 예술적 성취에는 이런 개인적 체험이 녹아있다

그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2003년, 2008년에 이어 세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최근 3년간 작업해 온 신작 7점은 크게 두 갈래다. 구도의 행위를 연상시키는 듯 느리고 반복적인 걷기, 그리고 순교자를 떠올리게 하는 고통 끝의 재생이다.

사각의 화면, 황량한 풍경의 양끝에서 두 여인이 걷는다.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인 듯한데, 어느 순간 둘의 사이는 가까워지고 나이 든 여성이 젊은 여성에게 ‘지혜’를 전한 뒤 둘은 또 각자의 길을 걷는다. 작품 ‘조우’에서 보여주는 걷기 행위는 ‘조상들’ ‘가녀린 실’ ‘내면의 통로’ 등 다른 작품에서도 혼자 사막을 걷는 남자나, 같은 방향을 유지하지만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걷는 연인 등의 배우를 출연시켜 다양하게 변주된다.

이들 작품이 ‘가도 가도 끝없는 인생 길’ 식의 구성이라면, 전시의 또 다른 축은 순교의 이미지다. ‘물의 순교자’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5월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에 제단화처럼 선보였던 ‘순교자 시리즈(흙, 공기, 불, 물)’ 네 작품 중 하나다. 바닥에 웅크린 남자.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오래 그렇게 있다가, 어느 순간 발목을 묶은 밧줄이 그를 끌어올리고 완전히 거꾸로 매달린 그의 몸 위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소리를 삭제한 영상은 고통을 감내하는 인간상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또 다른 작품 ‘도치된 탄생’은 검붉은 액체를 뒤집어쓰며 고통과 두려움 속에 재생되는 인간을 보여주는데, 5m 높이의 스펙터클한 수직 영상이 관객을 압도한다.

비올라는 지난 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삶의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필연적 고통에 대응하는 인간의 희생과 인내가 지니는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제자이다. 모교인 뉴욕주 시러큐스대학 에버슨미술관에서 비디오아트 기술자로 일하던 1974년, 백남준의 전시를 도우며 인연을 맺고 79년까지 함께 일했다. 둘의 작품 세계는 동양인과 서양인이 거꾸로 된 듯하다. 백남준 화면이 3분용의 ‘시시각각 어지럽게 바뀌는’ 화면을 구사하는 것과 달리 비올라의 영상은 20분이 넘는다. 슬로 모션으로 아주 천천히 화면 속 변화가 일어나는 동양적 명상의 세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1초’를 참지 못하는 현대인에게는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다.

동양적 느림의 미학은 시대적 자양분에도 뿌리를 둔다. 대학을 다니던 70년대에는 베트남전 실패로 반전 기치와 더불어 동양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이후 80년 소니사 입주작가로 1년여 일본에서 체류했던 경험은 그의 예술세계를 180도 바꾸었다. 스승 백남준은 어떻게 봤을까.

“90년대 초반인가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오마주한 작품이었는데, 백남준 선생님도 변화된 작품 세계에 놀라시더군요.”

95년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대표작가로 선정된 비올라는 일본의 모리, 프랑스 그랑팔레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지며 현존 최고의 비디오아티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5월 3일까지(02-735-8449).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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