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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단색화, 자연과 하나되려는 몸부림”… ‘묘법’전 여는 ‘단색화 선두주자’ 박서보 화백

“마음을 비우는 방법 아들 글쓰기에서 배워…”

“한국 단색화, 자연과 하나되려는 몸부림”… ‘묘법’전 여는 ‘단색화 선두주자’ 박서보 화백 기사의 사진
미술계 한류를 이끄는 단색화의 선두주자 박서보 화백(왼쪽)이 그린 ‘묘법’(오른쪽). 자연과 하나 되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붓질한 작품이다.노화랑 제공
“1967년이었죠. 어린 아들이 한글 쓰기 연습을 하다가 잘 안 되니까 연필로 여러 번 그어버리더라고요. 그걸 보고 제가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할지 방법을 깨달았어요.”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작가 박서보(84) 화백의 연필 그림 ‘묘법(描法)’은 그렇게 시작됐다. 박 화백은 요즘 국내외 미술계에서 핫이슈가 되고 있는 단색화 열풍의 선두주자다. 작품을 위해 항상 “마음을 비워야 한다. 체념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몰라 고민하던 중 아들의 글쓰기를 보면서 무릎을 쳤다는 것이다.

박 화백이 11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길 노화랑에서 ‘묘법: 에스키스-드로잉’ 전을 연다. ‘에스키스’란 작업을 하기 위한 아이디어 스케치를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67년부터 이어온 그의 묘법 시리즈는 미술계 한류인 단색화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호평받고 있다.

전시를 앞두고 7일 노화랑에서 만난 그는 “서구의 미니멀리즘(모노크롬)이 색(色)에 대한 거부 움직임이었다면 한국의 단색화는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무색의 몸부림”이라고 설명했다. 박 화백은 최근 프랑스 파리 페로탱갤러리에서 단색화 그림으로 개인전을 열어 각광받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작업한 출품작 40여점은 종이에 연필로 그린 것으로, 자로 잰 듯 반듯하다. 작품과 관련된 생각을 우표 크기의 종이에 적어뒀다가 이것을 확대해 그려내는 작업이다. 드로잉 도구는 평판 크레용, 연필, 수정액 펜 등 다양하다.

그는 평소 “나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 형태조차도”라고 강조하곤 했다. 그러나 “밤에 봤던 한강 다리, 아내와 여행하며 봤던 제주도의 해변 풍경 등을 재해석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단색화의 저항 이미지에 대해서는 “어떤 작가의 작품이든 시대를 반영한다. 나도 정치적인 것을 직접 표현한 적은 없지만 시대로부터 받은 상처가 작품에 내재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화가를 세탁기에 비유했다. “그림은 보고 느낀 것들을 걸러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때문이죠. 화가가 말끔히 비워낸 자리에 관객들은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면 좋겠어요. 그게 단색화의 힘이자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 화백은 미술계에 ‘쓴소리’를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이를 먹으니 이제 탐욕이나 잡스러운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아요. 남들이 뭐라고 해도 한쪽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요. 제 스스로 단색화가 돼 가고 있는 거지요. 허허.”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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