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 우리에게 무엇인가] 日, 허둥대다 1천억원 든 ‘SPEEDI’도 활용 못했다 기사의 사진
오는 11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4주년을 맞는다. 일본사회는 급속히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원전 반경 30㎞는 주민의 접근이 차단돼 있으며 파괴된 원전 건물 철거 작업 완료도 아직 요원하다. 일본정부는 사고 이후 사고조사·검증위원회를 꾸려 진상 조사에 착수, 2012년 최종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했다. 당초 일본정부는 보고서 외의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증위원회가 요시다 마사오(吉田昌郞·2013년 7월 사망)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소장을 인터뷰해 작성한 일명 '요시다 조서'를 아사히신문이 입수, 지난해 보도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일본정부는 보고서의 토대가 된 사고 관련자 조사 자료를 단계적으로 공개했다. 공개된 문서 중에는 '후쿠야마 조서'도 포함돼 있다. 사고 당시 관방성 부장관으로서 주민 대피 등 사후 처리를 맡은 후쿠야마 데쓰로(福山哲郞·현재 민주당 참의원 의원)를 인터뷰해 작성된 문서다. A4용지 100장에 달하는 문서에는 원전 건물이 폭발해 방사성 물질이 유포되는 상황에서도 적절한 정보를 얻지 못한 채 실책을 거듭하던 당시 난맥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원전을 가동 중인 국가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3㎞·10㎞·20㎞…‘오락가락’ 대피령=동일본 대지진 발생 당일인 2011년 3월 11일 오후 9시23분, 일본정부는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 명의로 후쿠시마 제1원전 반경 3㎞ 내의 주민에게 피난 명령을 내렸다. 당시 요시다 제1원전 소장은 원자로 1호기에 대해서는 비상용 냉각장치가 작동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2호기에 대해서는 “원자로 수위도, 냉각수 투입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고 감독기관에 보고했다.

왜 반경 3㎞였을까? 근거를 묻는 조사자의 질문에 후쿠야마 전 부장관은 마다라메 하루키(班目春樹) 당시 원자력안전위원장의 어림짐작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마다라메 위원장이 ‘한꺼번에 대피령을 내리면 정체가 발생할 수 있으니 우선 가까운 지역 사람들을 대피시키면 범위가 넓지 않아서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3㎞로 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몇 시간이 지난 12일 오전 5시44분, 일본정부는 대피 범위를 10㎞로 넓혔다. 앞서 밤 12시6분, 격납용기 손상을 방지하고자 증기를 대기에 배출하는 벤트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였다. 후쿠야마 전 부장관은 “오전 5시를 지나면서 폭발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상황이었다”며 “너무 오래 끈다는 생각이 들어 빨리 지시를 내리려 했다”고 말했다.

12일 오후 3시36분, 결국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원전 1호기가 수소 폭발을 일으켰다. 4호기에서도 연기가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일본정부는 폭발이 일어난 지 3시간이 지난 오후 6시25분에야 대피령을 20㎞ 반경으로 확대했다. 심각한 상황임에도 30㎞ 이상 확대하지 않은 건 어이없게도 ‘반경을 넓히면 대피 주민 수가 14만명까지 늘어나 운송수단을 준비하고 어린이·노약자 등을 대피시키는 데 4∼5일 걸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사흘이 지난 3월 15일 오전 11시, 일본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 반경 20∼30㎞ 이내 주민들에게 ‘옥내 대피’를 지시했다. 집안에 머무르라는 지시였다. 공기 중에 방사능 물질이 확산돼도 건물 내에서는 피폭되지 않으리라는 판단에 따랐다. 임시방편에 불과했지만 일본정부는 옥내 대피령을 무려 열흘이나 유지했다. 3월 25일, 일본정부는 해당 반경 주민들에게 자체적으로 대피할 것을 요청했다. 제대로 된 위험 파악조차 하지 못해 사고 후 2주 가까이 주민들을 방사능 노출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SPEEDI’는 어디에…예산 써놓고 활용도 못해=일본정부는 이미 1993년 ‘피난경로 예측 시스템(SPEEDI·System for Prediction of Environment Emergency Dose Information)’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기상·지형 정보를 바탕으로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어디까지 확산됐는지, 공기와 토양이 얼마나 오염됐는지, 건강에 어느 정도 악영향을 미칠지 시간대별로 예측해 위험지역 주민들을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원전 사고 발생 시 주민 피폭을 최소화하고자 120억엔(약 1100억원)을 들여 개발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후쿠시마 주민을 대피시키는 데는 무용지물이었다. 정부 관계자들 중 이 시스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후쿠야마 전 부장관은 “SPEEDI와 관련해서는 16∼17일까지 몰랐다. 언론을 통해 그런 게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후쿠야마 전 부장관의 회상에 따르면 이 시스템의 존재를 알게 된 건 16∼20일 사이다. 그는 마다라메 원안위원장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 “SPEEDI라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마다라메 위원장은 “SPEEDI는 작동하지 않을 뿐더러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후쿠야마 전 부장관은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당시 관방장관과 함께 SPEEDI 담당 부처인 문부과학성과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보안원 관계자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야 했다.

당시 SPEEDI는 문부과학성 원자력안전기술센터에서 멀쩡히 작동하고 있었다. 원자력안전보안원 긴급대응센터는 지진 발생 당일인 3월 11일 오후 9시12분 SPEEDI를 통한 1차 예측 자료를 입수했다. 원전 2호기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방사성 물질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예측하고 주민 피난 범위를 설정해 총리관저 내 원자력재해대책본부에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3월 16일까지 SPEEDI는 예측 자료를 45회 작성했지만 보고서로 출력된 건 단 2회분뿐이었다. 그나마 해당 문서가 누구의 손에 들어갔는지도 불분명하다. 이 때문에 ‘사고를 축소·은폐하려고 고의로 정보를 은폐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후쿠야마 전 부장관은 “(사고 직후인) 11∼12일에 SPEEDI의 존재를 알았다 하더라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컴퓨터가 산출한 숫자를 근거로 주민들에게 집과 재산을 버리고 대피하라고 지시하라는 건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지자체가 발 빠른 대응=중앙정부가 우왕좌왕한 반면 지자체의 대응은 신속했다. 사고 이래 가장 많은 방사능 물질이 유출된 3월 15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서쪽으로 45㎞ 떨어진 후쿠시마현 미하루마치(三春町)는 갑상선암 예방용 요오드제를 주민에게 배포했다.

이 지자체는 피난민들이 몰려오자 마을 간부를 중심으로 원전 사고 대책과 관련된 학습을 진행했다. SPEEDI와 유사한 시스템의 데이터를 오스트리아와 노르웨이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얻은 뒤 이를 바탕으로 15일 하루 동안 주민 7000여명에게 안정 요오드제를 공급했다. 이 지자체 외에도 3곳의 지자체가 대응에 나섰다. 배포된 요오드제는 총 15만7000여명 분량이었다.

대피령을 내린 것도 중앙정부보다 지자체가 더 빨랐다. 사토 유헤이(佐藤雄平) 당시 후쿠시마현 지사는 사고 당일인 11일 오후 8시50분 원전 반경 2㎞ 주민에게 대피를 지시했다. 중앙정부의 지시보다 33분 빨랐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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