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위안부 할머니 영화 ‘귀향’ 만드는 조정래 감독 “일제에 짓밟힌 청춘 영화 통해 위로” 기사의 사진
‘북치는 영화감독’으로도 유명한 조정래 감독이 문화적 증거를 남기기 위해 위안부 할머니 영화 ‘귀향’을 만들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구성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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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 나라에서 살아가지만 진심으로 가까이서 위로해드리지 못한 마음을 담아 후원합니다. 다시는 이 땅의 여인들이, 아니 모든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갈 수 있길 간절히 염원합니다." "미래를 살아갈 세대로서 규명되지 않은 진실들을 제대로 규명하고 아픔을 함께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날까지 응원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수요집회에 딱 한번 참석한 것이 전부인 저에게 할머니들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동참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실화를 다룬 영화 '귀향'. 이 영화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으로 한 푼 두 푼이 보태져 만들어지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뜻으로 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 등을 활용한 투자방식이다.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국민들의 이런 사연 하나 하나와 함께 자그마한 정성이 모여 제작되고 있는 영화가 바로 '귀향'인 것이다. 현재까지 참여한 후원자만 3만명이 넘었고 후원금은 5억원을 돌파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올해 일본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가 없다는 소송이 제기된 상황에서 이 영화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원로배우 손숙(70)씨도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하고 있는 '귀향'의 조정래(42) 감독을 지난 5일 오후 서울 성산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북치는 영화감독’ ‘판소리 고수’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다니던데.
“대학시절 캠퍼스 연못가에서 예쁜 여학우가 부르는 판소리를 듣고 그때부터 판소리와 북을 좋아하게 됐다. 국악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고, 오정해 주연의 영화 ‘서편제’(1993)는 극장에서 다섯 번 봤을 정도다. 북은 국립국악원의 명고수 김청만 선생님께 배웠고 판소리는 중요무형문화재 성우향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판소리 고법으로 2006년 서울전국국악공연대회에서 준우수상, 2011년 장흥전통가무악대제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판소리와 북이 결국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게 해준 셈이다. 2002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에게 판소리와 북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위문공연을 자주했다. 한번은 수개월 동안 친해졌다고 생각해 한 할머니의 어깨를 주물러드리려 했다. 그런데 순간 그 할머니는 전광석화처럼 내 손을 ‘탁’치면서 그대로 밀쳐버렸다. 예전의 아픔으로 인해 남자의 손길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때 충격을 참 많이 받았다.”
-‘귀향’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동기는.
“할머니들은 종종 그림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곤 한다. 일종의 ‘그림 힐링’이다. 한번은 강일출(87) 할머니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태워지는 처녀들’이라는 제목이 붙었는데 중국으로 끌려간 강 할머니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병에 걸렸을 때 일본군이 자신을 불태워 죽이려 했던 장면을 기억하고 그린 그림이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15세 때 위안부로 끌려간 강 할머니는 당시 일본군과 광복군 사이에 벌어진 교전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며칠을 잠 못 이루다 이를 시나리오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많은 영화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귀향’은 극영화로 제작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
-영화의 줄거리는.
“귀향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10대 시절 얘기다. 16, 17세 꽃다운 나이 말이다. 정말 너무나 잔혹한 상황 속에서 끌려가 대부분 머나먼 타향에서 쓸쓸히 생을 마쳤다. 증언에도 있었지만 탈출을 감행하다가 죽임을 당한 할머니들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영화는 주로 이런 상황이 묘사된다. 비록 영화에서나마 고향으로 모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준비하게 된 영화가 바로 ‘귀향’이다.”
-원로배우 손숙씨도 주인공으로 참여한다고 하던데.
“손숙 선생님은 위안부 피해자였던 영희역을 맡았다. 몇 달 전 손 선생님이 시나리오를 보고 일면식도 없던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할머니들께 늘 죄송한 마음이 있었고 빚진 마음이 있었다. 재능기부로 빚을 갚을 수 없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만났더니 ‘혹시나 해서 얘기하는 건데 나는 개런티 안 받을 거야’라고 말씀하더라. 제가 그때 정말 많이 울었다. 손 선생님의 참여로 영화 제작에 탄력이 붙을 수 있었다.”(손씨는 지난해 10월 제작발표회에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이 작품을 만난 게 운명인 것 같다”면서 “지금까지 했던 어떤 역보다 힘들 것 같다. 가슴이 너무 아플 것 같다”고 말했다.)
-재일동포 배우들도 다수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맞나.
“일본인들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라서 배우들의 일본어 사용이 유창해야 한다. 당초 일본인 배우를 섭외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고 결국 재일동포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 주연인 강하나(16)양은 물론 일본군 역할을 맡고 있는 정문성씨와 유신씨도 재일동포다. 손씨처럼 이들도 기꺼이 출연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해 너무 고마웠다.”
-촬영하기까지 11년이나 걸렸다는데.
“2003년 처음 시나리오를 쓴 뒤 지금까지 시나리오를 계속 고쳐나가면서 동시에 영화 제작에 투자할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에 사람들이 호응하겠느냐’ ‘쓸데없는 고생하지 말라’며 말리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럴 때마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각오가 더 다져졌다. 영화를 통한 문화적 증거를 남기겠다는 간절함이 더 절실해졌다고나 할까.”
-크라우드 펀딩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0월 1차 촬영을 마쳤다. 그렇게 만든 3분 남짓한 티저 영상이 기적의 씨앗이 됐다. 이 짧은 영상을 본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국민 모금이 시작됐다. 1000만원을 목표로 시작한 모금은 어느새 2억5000만원이 넘는 투자금으로 불어났다. 영화의 제작 의도와 과정이 알려지면서 2만5000여명이 댓글을 달았다. 수많은 댓글은 산이 됐고 엄청난 후원금으로 연결됐다. 조 감독의 '귀향'제작에 공감한 한 중소기업도 후원금 400만원을 전달했다. 가수 김장훈씨도 공연기금 등을 모아 600여만원을 내줬다. 일본과 미국 등에서도 후원이 답지해 현재까지 모두 5억원이 넘게 쌓였다. 영화 제작에 필요한 예산 25억원에는 아직 턱없이 모자라지만 국민이 만드는 영화라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후원 방법은 계좌이체 <우리은행 1005-002-173230·제이오엔터테인먼트> 또는 문자 기부 <#1365-2015·건당 3000원>)
-앞으로 스케줄은 어떻게 되나.
“공식적인 크랭크인은 다음 달 15일 시작된다. 6월까지 촬영을 마칠 계획이다. 그리고 광복절인 8월 15일 위안부 할머니들과 후원자들을 모시고 시사회를 여는 게 목표다. 죽어간 위안부 할머니들을 귀향시킨다는 바람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타향에서 몹쓸 짓을 당한 꽃다운 소녀들에게는 고향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그런 것일 게다.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한 짓밟힌 꽃들이 이 영화를 통해 돌아올 수 있도록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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