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준동] 부실입법, 도대체 왜 이리 많은지 기사의 사진
‘김영란법’은 제정 이틀 만에 헌법소원 대상이 되고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법안은 국회 본회의를, ‘담배갑 경고그림’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민의가 반영된 법안들은 잇따라 좌초되고, 법안이 꼼수로 누더기가 되는 현실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과연 우리 국회의 입법 과정이 어떠하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선진 의회라면 어땠을까. 뭐 이런 것들이었다. 그래서 홍완식 한국입법학회장, 미국과 독일 의회 입법 과정에 정통한 임종훈 교수(홍익대 법학부)와 최윤철 교수(건국대 로스쿨), 그리고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 국회 사무처 법제실 관계자 등에게 물어봤다.

우선 한국 국회가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 의회를 살펴보자. 1차 법률 자문은 의회 산하 법제실(Office of Legislative Counsel)이 맡는다. 총 70여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법제실은 발의 단계뿐만 아니라 위원회 또는 본회의 심사 단계에서의 수정안 작성 등 모든 법제 업무를 수행한다. 법제실의 검토를 마친 법안은 소위원회 청문회와 의원 전원위원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다시 이루어진다. 특히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법안의 경우 의원 전체가 참여하는 전원위원회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수십명의 전문 보좌진을 거느린 의원들은 활발한 토론을 벌이고 수정안도 수시로 내놓으며 거의 완벽에 가까운 법안을 만들어간다. 임 교수는 민의가 담긴 법안 같은 경우 해당 위원회에서 통과되면 100% 입법화된다고 전했다.

독일은 입법 과정에서 ‘국가규범통제원’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법안을 심층 분석한다. 100명에 가까운 법률가 집단을 보유하고 있는 학술지원처도 발의부터 상정까지 요소요소마다 필터 역할을 한다. 최 교수는 “여러 영역에서 공식적인 기구들이 작동하는 것이 독일 입법 과정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김영란법’ 같은 경우 독일에선 못해도 7∼8년은 족히 걸렸을 것이라고 했다.

그럼 우리 국회의 입법 과정을 보자. 발의 법안이 제출되기 전에 체크될 수 있는 공식 기구는 국회 법제실과 입법조사처 정도다. 하지만 법제실과 입법조사처 검토는 의무사항이 아닌 임의 절차에 불과하다. 실제로 이곳을 거친 발의 법안은 절반도 안 된다고 한다. 입법이 의원 자신들의 고유영역이라고 내세우기 때문이다. 미국, 독일, 일본 의회에선 법제기관의 심사 없이 발의된 법안이 한 건도 없는 것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현재 법제실에 속해 있는 법률전문가는 고작 8명 밖에 없다. 미국이나 독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다. 홍 회장은 “선진 의회에선 법안을 삼중 사중으로 거르는 장치가 있지만 우리는 사전 심의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교한 사전 절차가 없다보니 법안 발의 건수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15대 1144건, 16대 1912건, 17대 6387건, 18대 1만2220건, 19대 1만1621건(1월 31일 현재)으로 늘고 있다. 반면 가결률은 15대 40.3%, 16대 27%, 17대 21.1%, 18대 13.6%, 19대 6.5%로 떨어졌다. 양만 늘었지 질은 형편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계별로 전문가들의 지원을 받는 관계로 법안 폐기율이 현저히 낮은 미국과 독일에 대비된다 하겠다. 이상민 위원장이 “심의 법안이 하루에 적게는 150건, 많게는 200건씩이나 된다. 이렇다 보니 물리적으로 심의를 꼼꼼히 할 수 없다. 위헌 소지가 있는 법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이제 알 것 같다. 왜 ‘김영란법’이 반쪽짜리 법안으로 변질되고, 왜 그렇게 많은 부실 입법들이 양산되는가를. 우리 국회가 정쟁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법을 제대로 만드는 법부터 치열하게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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