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권지혜] 행복해지는 연습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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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라는 게 있다.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이 18년 동안 1000명의 남녀를 실험해 고안해낸 공식이다. 행복은 인생관 적응력 등 개인적인 특성(Personal), 돈 건강 인간관계 등 생존조건(Existence), 야망 자존심 등 고차원 상태(Higher order)라는 3가지 요소로 결정되는데 그중에서도 E가 P보다 5배 더 중요하고, H는 P보다 3배 더 중요하다. 이 지수를 공식화하면 P+(5×E)+(3×H)가 된다.

복잡한 공식 이야기를 꺼낸 건 지난달 월급날이 생각나서다. 연말정산 세금폭탄이 예견됐던 터라 마음을 비웠었는데 웬걸, 월급명세서를 받아보니 평소보다 30만원이 더 찍혀 있는 게 아닌가. 작년에 돌려받았던 금액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쳤지만 토해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며 위안을 삼았다. 기대를 접었더니 예상 밖의 기쁨이 오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월급이야 통장을 잠시 스쳐가는 것이거늘 30만원이 준 행복감은 꽤 컸다. 이 기쁨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돈은 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걸까.

돈이 주는 만족감은 의식주를 해결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데만 있지 않다. ‘돈의 철학’에서 게오르그 짐멜이 지적했듯 돈은 ‘모든 가치의 가능성을 모든 가능성의 가치’로 만드는 절대적 수단이다. 돈을 가지고 있는 게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좋은 건, 선택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추가적인 만족감 때문이다. 짐멜은 “돈의 가치는 그것과 교환될 수 있는 대상물에다가 셀 수 없이 많은 대상물에 대한 자유 선택의 가치를 더한 것과 같다”고 했다. 지금이야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1800년대 이 같은 통찰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이 말을 되새겨보니 정말로 30만원은 쓰지도 않았는데, ‘이걸 살까’ ‘저걸 해볼까’ 궁리하면서 며칠 동안 싱글벙글했던 것 같다.

‘돈 없이 행복할 수 없다’는 말과 ‘돈만으론 행복할 수 없다’는 말은 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심리학자나 정신과 전문의들은 경제적 조건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아주 열악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면 어느 단계부터는 경제력에 따라 행복을 느끼는 차이가 크지 않다고 한다. 문제는 열악한 수준이 어느 정도냐다. 한데,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다 어려워지고 있어 역설적이게도 경제력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의 심리는 묘해서 수단으로 시작된 것이 그 자체가 목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극단적 예가 바로 돈이기도 하다.

돈도 돈이지만 행복에 있어선 기대심리를 빼놓을 수 없다. 내년에는 급여도 오르고 더 잘살게 될 거라는 희망이 있으면 행복하다. 하지만 올해보다 내년이, 내년보단 내후년이 더 힘들 것 같은 상황에선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건 지금 당장 얼마를 갖고 있느냐를 넘어서는 문제다. 개인, 가족, 회사, 사회 전체로 넓혀 봤을 때 지금 우리는 나아질 거란 기대감보다 ‘현상유지만 해도 다행이다’는 절망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행복과 관련된 명언 중에서 돈을 언급한 건 10%도 안 된다고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을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불행해진다”고 했고, 조지 오웰은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단정 짓지 말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돈이 행복의 최우선 조건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믿을 만한 행복의 보증수표는 많은 수입”(제인 오스틴)이라거나 “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사람들을 믿게 하는 건 일종의 정신적 허영”(알베르트 카뮈)이라는 식이다. 이래저래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냥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는 수밖에.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인생의 힘든 고비를 한두 번쯤 겪었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조언이 있다. 하루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 혹은 감사한 순간을 떠올려보고 적어보는 것이다. 이게 습관이 되면 점점 더 행복한 일, 감사한 일이 많아진다고 한다. 행복해지는 연습을 통해 일상의 작은 행복도 감지할 수 있는 ‘촉’을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친절한 행동을 실천에 옮기기, 가족·친구들과 시간 보내기 등을 추가하면 금상첨화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난 두 딸내미가 어린이집에서 울지 않고 씩씩하게 “엄마 안녕”이라고 인사해줘서 감사했다. 간밤에 맥주를 마셨는데도 몸무게가 늘지 않아 신났다. 이게 정말 중요한데, 도무지 채워지지 않을 것 같던 이 지면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그리고 또… 꽃샘추위가 물러간다고 한다. 이제 진짜 봄이다!

권지혜 정치부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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