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윤정구] 초일류 조건, 문화를 팔아라 기사의 사진
김구 선생과 이건희 회장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의 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영역에서 한국의 지도자들이 지향해야 할 세계관의 한 꼭지를 공유하고 있다. 그 공통점은 초일류 국가나 초일류 기업의 충분조건을 문화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김구 선생의 ‘문화강국론’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한국이 지금처럼 어느 정도의 경제적 기술적 성취를 이룬 다음 단계에서 세계시민들에 의해 선진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김구 선생의 생각은 국민소득이 어느 일정 수준에 오르면 이 문제는 그 국가가 선진시민에 걸맞은 문화적 품격을 유지하고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남의 것을 모방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세운 우리 고유의 문화 속에 담겨 있는 한국의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스토리가 다른 세계시민들과의 교류 속에서 전파되고 이들이 한국으로 말미암아 행복을 체험하게 된다면 한국은 초일류 국가라는 것이다.

다음은 이건희 회장의 1996년 신년사 내용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자 지적 자산이 기업의 가치를 결정짓는 시대입니다. 기업도 단순히 제품을 파는 시대를 지나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팔아야만 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창의력이야말로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자 21세기 기업 경영의 최후 승부처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21세기 우수 기업들의 기술로 승부를 볼 수 있는 품질 수준이 어느 정도 달성된다면 품질 다음으로 기업의 승부를 가르는 것은 회사가 파는 제품과 서비스에 그 회사의 문화적 스토리가 담겨 문화적 체험을 팔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내용이다. 21세기 기업들은 문화를 통해 다른 회사 제품 속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체험을 팔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을 설파하고 있다. 결국 초일류 기업의 조건은 상품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그 회사만의 문화를 체험하게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국가든 기업이든 문화가 이들을 초일류로 거듭나게 할 수 있는 21세기 승부처라는 사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을 때 우리가 같이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 대한민국이나 삼성, 현대, LG, SK 등 굴지의 기업들이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팔 수 있는 문화적 품격을 구축하고 있는지의 문제다.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그 기업의 임직원들이나 국가의 시민들이 자신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한다면 문화를 판 것이 아니라 상품에 문화라는 포장을 마케팅한 것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광고 등으로 겉보기에는 멋진 문화로 장식된 것 같았으나 이것이 다 마케팅 전략이란 것이 판명된 대한항공의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 문제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워할 문화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가 자랑스러워하는 문화가 없다면 국가와 기업은 이상한 일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런 점에서 김구 선생의 문화강국론은 각 영역에서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이런 초일류의 자랑스러운 문화적 품격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는 어떤 품격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질문하고 있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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