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무상급식은 ‘국민 권리’ 교육이다 기사의 사진
서구에서는 신도시를 만들 때 중심지에 교회와 학교 부지를 우선적으로 확보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관공서와 보험회사가 요지를 차지하고, 학교는 시끄러운 대로변으로 내몰린다. 가뜩이나 좁은 학교 운동장 일부가 주차장이나 주민 편의시설로 둔갑하는 일도 있다. 국내 도시에서 현대식 냉난방설비와 수세식 화장실은 오래전에 보편화됐지만 학교 건물에는 아직도 없는 곳이 많다. 슬픈 결론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자식만 사랑할 뿐 어린이(다음 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여년 전 교육부를 출입할 때 교육자 출신인 한 관료와 나눈 얘기들이다.

외국에서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 전체가 나선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편적 무상급식은 그런 정신이 구현된 것이다. 그러나 홍준표 경남지사가 최근 무상급식 예산지원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대선 ‘잠룡’들을 필두로 정치권에서 무상급식을 둘러싼 난타전이 한창이다. 무상급식은 2014년 기준 전국 시행률이 초등학교 98%, 고교까지 합쳐 68.1%여서 정착돼 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논리는 예산의 효율적 배분 필요성이다. 부자 자녀들에게 줄 급식비를 아껴서 서민 자녀들의 교육보조금으로 돌리자는 게 홍 지사의 생각이다. 그는 “진정한 복지는 부자에게 눈치 안 보고 부자로 살 자유를, 가난한 사람에게는 잘살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의무교육도 부자들은 자기 부담으로 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다. 어느 체제에서도 경제적 효율성보다 우선하는 가치들이 있는 법이다. 게다가 선별적 복지가 경제적으로도 반드시 더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무상급식은 큰 틀에서 국민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로 파악된다. 헌법 22조는 모든 국민이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31조는 의무교육 무상원칙을 담고 있다. 의무교육인 학교의 급식은 ‘무상급식’이자 ‘의무급식’이다. 학생 일부가 ‘가난하니까 국가로부터 점심을 얻어먹는다’는 굴욕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 울산광역시처럼 선별무상 급식을 하되 학부모가 동사무소에 신청하도록 하면 낙인의 표가 안 난다는 주장도 허구다. 동급생들이 결국 알게 마련이고, 모른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소득 하위 몇 %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 어린이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무상급식은 기본권과 국가의 의무에 대한 권리의식을 키울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또한 국가에 대해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자존감도 갖게 된다. 그런 혜택마저 못 받는다면 가난한 학생은 어릴 때부터 차별에 대한 좌절과 ‘나라가 나에게 해준 게 뭐냐’는 적개심을 품을 수 있다.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은 16일 ‘홍준표 지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이렇게 썼다. “얼마나 못 사는지를 입증해야 하는 부모와 아이의 마음, 급식비를 못 내는 아이들에게 매달 독촉장을 내밀어야 하는 선생님, 그것을 받자마자 책상 서랍 속으로 구겨 넣는다는 초등학생들(…)은 급식이 단순히 한 끼 밥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개인의 자존과 사회적 공존의 방식, 즉 인권과 복지의 문제임을 웅변합니다.”

무상급식 재원은 2014년 기준 교육청이 1조5666억원(59.0%), 지방자치단체가 1조902억원(41.0%)을 각각 부담하고 있다. 현행 학교급식법에는 ‘급식비는 보호자가 부담하는 게 원칙’이라고 돼 있다. 정부는 하루속히 학교급식법을 개정해 최소한 중학교까지 급식비의 50% 이상, 또는 적어도 30%를 중앙정부가 부담한다는 원칙을 정해야 한다. “임금(국가)은 백성(국민)을 하늘로 여겨야 한다.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王者以民爲天 民以食爲天).” 중국 역사가인 사마천이 ‘사기’에 남긴 말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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