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한홍]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콤비 기사의 사진
괴한에게 흉기로 피습당하여 자칫 잘못했으면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에 처했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소식은 한동안 우리나라 매스컴 전체의 주목을 받은 핫뉴스였다. 그 무서운 테러를 당하고도 침착하고 용기 있게 대처하며, “함께 갑시다”라는 글을 트위터에까지 올리며 한국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표시한 리퍼트 대사로 인해 엄청난 친미 감정이 나라 전체로 확산되었다. 미국인들이 용기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데 반해 우리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어필하는 것은 약자를 향한 애틋함이다.

대선 때 감성코드 놓친 이회창과 문재인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이 노무현에게 진 이유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감성 코드를 놓쳤기 때문이다. 최고 학벌의 서릿발 같은 완벽주의 엘리트 이미지의 이회창. 기라성 같은 엘리트들에게 둘러싸인 그는 자신의 정적들을 포용하지 않았고, 약자들을 귀하게 여기고 끌어안고 울어주지 못했다. 그에 비해 상고 출신에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시골 아저씨 같은 노무현. 그의 정치홍보 이미지는 ‘리어카를 끄는 달동네 아저씨’였고 ‘눈물 흘리며 기타를 치는 대통령’이었다. 말도 거칠고 모든 게 불안했지만 국민들은 그에게 기대 반, 동정 반의 표를 몰아주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앨 고어는 하버드 출신의 조각 미남에 똑똑한 엘리트였고, 부시는 누가 봐도 무식한 냄새가 풍기는 텍사스 카우보이였다. 그러나 박빙의 승부에서 중도층은 오히려 부시에게 인간미를 느꼈고 고어는 낙선했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이 박근혜에게 진 이유의 상당 부분 또한 감성 코드 때문이다. 문 후보는 “박 후보님을 떨어뜨리려고 나왔다”는 통진당 이정희의 무례함을 방관했다. 두 부모를 총탄에 잃고, 아버지의 측근들에게도 외면당해 외롭고 힘들게 살아오다 재기한 박근혜를 항상 아버지와 연관시켜 연좌제로 몰아가려 했다. 이렇게 하면 박근혜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던 중도층도 동정심리가 발동해 순식간에 표심이 거꾸로 뒤집어진다. 게다가 안 그래도 ‘조퇴, 명퇴, 삼식이, 오륙도’ 하면서 직장과 가정에서 밀려나느라 서글픈 50대 플러스를 향한 진심어린 눈물이 없었다. 여당과 야당의 정책 어젠다가 거의 비슷해져가는 상황에서는 누가 더 따뜻한 인간미를 풍기는가. 누가 더 내가 도와줘야만 될 것 같은 모성애를 느끼게 하는가가 결정적이었다는데, 문 후보는 여기서 결정적 패착을 두었다.

약한 자 섬겼던 예수 그리스도 본받아야

약자에게 쏟아지는 한국 대중의 동정심은 힘을 가진 쪽에게 항상 불리하게 작용한다. 사자는 웃어도 토끼가 인상 쓰는 것보다 더 무섭다. 힘을 가진 자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겸손하게 섬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약자를 무시하는 오만한 갑(甲)으로 몰린다. 그래서 요즘 한국에서 어느 분야건 리더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항상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처럼 어렵고 예민하다.

오래전 나는 ‘칼과 칼집’이라는 리더십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있다. 칼이 실력이고 콘텐츠라면 칼집은 그것을 담는 그릇이다. 칼이 능력이라면 칼집은 인품이다. 명검일수록 칼집이 좋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칼이 아무것이나 베어버리게 된다. 리퍼트는 세계 최강 대국의 대사이지만 평소에도 늘 소탈하게 서울 도심을 걸어다니며 한국인들을 만났다. 불의의 테러를 당해 많은 이들의 동정표를 받았지만 동시에 침착하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미국형 리더의 강인함도 보였다. 리퍼트는 절묘한 칼과 칼집의 매력으로 많은 한국인들의 반미 감정을 녹여 버렸다.

2000년 전, 이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콤비의 절정을 보여주셨던 예수 그리스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으면서도 연약한 자들을 섬기셨던 그분의 리더십을 우리 모두가 다시 붙잡을 때다.

한홍 새로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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