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부패와의 전쟁’이 미덥지 않은 까닭 기사의 사진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이완구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12일)가 뜬금없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예고도 없이 불쑥 나온 데다 경제 살리기라는 흐름과도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 그날은 한국은행이 사상 첫 1%대 기준금리 시대를 전격 결정한 날이어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자세히 뜯어보면 새 내용도 거의 없다. 뭔가 노림수가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취임 이후의 총리 언행과 주변 상황을 되돌아보면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담화문에 적시된 4대 부정부패 대상(①방위사업 비리 ②해외자원개발 관련 배임·부실투자 ③일부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횡령 ④개인의 사익을 위한 공적문서 유출) 부분과 비교해 보자. 총리는 취임식(2월 17일)과 국무회의(2월 24일)에서 잇달아 공직 기강 확립을 주문한다. 담화문의 ④가 나온 배경이다.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횡령 의혹에 관한 언론 보도(2월 26일)가 나오자 총리는 이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답변을 한다. “심각한 부패문제” “즉각 관계기관에 사실관계 확인조사 지시”…. 이어 방산비리 같은 국가안위와 직결된 비리 등 몇 가지 부패 대상을 나열하면서 검찰 경찰 등 범정부적 차원에서 엄정 대처하겠다고 덧붙인다. 총리실은 총리 발언을 정리한 보도자료까지 배포한다. 여기엔 담화문 ③과 ①이 이미 들어 있다.

새 진용을 갖춘 검찰 역시 이달 6일 전국검사장회의에서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주요 수사방향을 설정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은 대기업 부정부패를 포함한 사회지도층 비리 대응 방안도 제시했다. 총리와 보조를 맞춘 셈이다. 이처럼 여러 경로를 통해 부정부패 척결 방침을 내놓았는데 담화문은 왜 발표했을까. 답은 ②에 있는 듯하다. 새로운 건 이명박정부의 자원외교 부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이 수개월간 형사부·조사부에 흩어져 있던 자원외교 관련 각종 고발사건을 미리 특수1부에 재배당해 놓은 것도 궤를 같이한다.

국민의 눈이 쏠리도록 자원외교를 상징적 비리로 부각시켜 사정 정국을 조성하는 데 딱 맞는다. 조각조각 발표된 것은 힘이 없지만 총리 첫 담화는 파괴력이 크다. 다음 날 포스코건설 압수수색을 신호탄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는 엊그제 자원외교 의혹까지 건드리면서 본격화됐다. ‘죽은 권력’인 전 정권 인사들이 타깃이다. 수사선상에 오른 대기업도 동부 신세계 동국제강 등으로 확대되면서 재계가 긴장하는 모습이다. 투자와 고용 등 경제 활성화에 동참해 달라고 구애하던 정부가 재계를 길들이기 위해 갑자기 돌아선 느낌이다.

부패 척결은 박근혜정부에서 줄곧 강조돼 왔다. 검찰이 상시적으로 해야 할 본연의 사명이기도 하다. 따라서 은밀하게 수사한 뒤 그 결과를 발표하면 된다. 그럼에도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 식으로 요란하게 선전하니 이벤트성 기획수사로 보일 수밖에 없다. 집권 3년차를 맞아 전 정권을 희생양으로 삼아 국면 전환을 꾀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 정권도 그랬다. 레임덕을 차단하고 국정 동력 확보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검찰의 손을 빌렸다.

사정 정국을 주도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수사 라인에는 이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인맥들이 포진돼 있다. 검찰총장이 신속히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를 주문했지만 그게 먹힐지 모르겠다. 조직 총수보다 청와대 윗선이 더 중요하니 말이다. 오히려 과거에 묵혀뒀던 내사 자료를 무기로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가능성이 적지 않다. 권부의 의중을 충실히 따랐던 게 어제오늘이던가. 부정부패 청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정치적 술수가 어른거리는 것 같아 썩 개운치 않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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