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유성열] 종말과 행복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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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지구의 미래는 밝지 않습니다.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한참 뒤 시간을 걱정하면서 살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오늘을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최근 취재원과 점심을 함께하며 이런저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자리에서 그리 말했다. 초면인 상대방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좀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까지 식탁 맞은편에서 커리어 관리, 결혼 준비, 노후 대비 등을 얘기하던 30대의 희망찬 눈빛은 생기를 잃어갔고, 그 빈 자리를 불길함이 채워가고 있었다.

사람은 닿을 수 없는 먼 미래까지 생각한다. 100년도 살지 못하면서(물론 이제는 가능하지만) 1000년을 걱정했기에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었다. 특히 경제활동과 사고(思考) 간 구분이 뚜렷했던 계급제 사회에서 사상과 철학이 발전할 수 있었고, 우주의 이치와 관련한 활발한 논쟁이 진행됐다. 하지만 요즘엔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걱정은 대부분 개인·가족에 그치기 마련이다. 지구의 남은 생명력이나 인류문명의 생존 가능성을 논하는 건 골치도 아프고 딴 나라 이야기처럼 생각된다. 또는 공상과학의 영역으로 취급하며 막연한 희망론으로 결론짓곤 한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1027만 관객 돌파에 성공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뼈대로 스토리를 풀어간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 영화를 세 번 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엔 영상과 음향이 자아내는 분위기에 매료됐다. 두 번째 관람 뒤에는 어느 정도 전반적인 내용과 논리가 이해되는 듯했다. 그리고 한 번 더 보고 나자 영화가 쏟아내는 종말론적 메시지와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대한 묘사가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우리 다음 세대는 지구에서 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였다.

남극 상공에 남극대륙의 두 배 크기로 뻥 뚫린 오존층 구멍, 매달 서울 면적 이상으로 파괴되고 있는 아마존 열대우림, 예측의 한계에서 벗어난 온갖 이상기후 등 실제 지구는 예정된 수명보다 하루하루 빠르게 죽어가고 있다는 의사표시를 스스로 확실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인 인류는 현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자녀 교육, 전셋값, 직장 내 승진 따위에 얽매인 개인이 지구 파멸의 물줄기를 바꿀 힘은 없다. 팽배한 이기주의와 경쟁심리에 공동의 생존 논리는 뒷전 멀찍이 저 편으로 밀릴 뿐이다.

‘평범한 삶’은 이제 장담할 수 없는 개념이 됐다.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행복할지 여부는 둘째 치고, 이 땅에 온전히 발을 딛고 살아갈 수나 있을지 불확실한 시대다. 노후라는 단어가 수십년 뒤에도 통용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오늘 태어난 아기가 언젠간 마지막 인류로서 우주 역사에 기록될지 모를 일이다. 노후를 대비하는 ‘한가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앞선 이전에 찾아보기 힘들게 될 터다.

인류가 앞으로도 종족으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은 지구를 되살리거나 인터스텔라를 비롯한 수많은 재난영화에서 연출했듯 지구를 떠나는 길뿐이다. 기껏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가 그 정도다. 그러나 지구를 살리려는 집단적 노력은 아주 미미하거나 이미 늦은 것으로 보이고, 지구를 떠나기에는 과학기술이 아직 그만큼 발달하지 못했다.

처음 만난 사람으로부터 지구의 미래가 어둡다는 내용의 칙칙한 조언을 들어야 했던 취재원은 밤낮없이 열심히 일을 하며 직장에서 인정받는 보통의 회사원이었다. 평소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한번쯤 꾹 참고 소비를 자제하면서 돈을 모은다고 했다. 매달 납입하는 정기적금으로 교제 중인 애인과의 결혼자금을 모으고 있었고, 연금적금을 통해 30년 뒤 찾아올 노후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퇴근 후에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고, 주말에 애인과 만나 무엇을 할지 생각해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지구의 미래에 대해 설득력 있고 긍정적인 전망이 제시되지 않는 이상 수년, 수십년 뒤를 걱정하고 준비하는 일은 결국 도박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좋게 봐도 보험 수준을 넘기 힘들다. 그보다는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어야 기쁘게 하루를 마감할 수 있을지, 토요일을 어떻게 보내야 잊지 못할 주말로 간직될지, 현재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고민하는 편이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최소한 먼 미래가 오늘과 내일의 행복에 걸림돌이 되는 것만큼은 일단 그만둬보자.

유성열 산업부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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