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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손수호] 돈의 노예로 전락한 대학… 재벌의 대학 지배, 지성 황폐화 몰고 와

지원금 미끼로 줄 세우기 하지 말아야

[청사초롱-손수호] 돈의 노예로 전락한 대학… 재벌의 대학 지배, 지성 황폐화 몰고 와 기사의 사진
신문사에 있다가 대학으로 일터를 옮긴 지 2년이 됐다. 전직 당시 주변의 축하를 받으면서 묘한 느낌을 가진 것은 ‘65세 정년’을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이었다. 언론인에서 교육자로 바뀐 신분에는 별 관심 없이 시간 운용의 자율성을 들어 복락의 땅으로 여기는 시선도 많았다. 그러나 막상 대학이란 곳의 교문에 들어서면 여유롭지 않다. 엄살이 아니다. 겉으로는 젊음으로 싱그러운 것처럼 보여도 속은 까맣다. 대다수 대학이 눈앞의 위기로 닥쳐온 학령인구 감소와 수년째 이어지는 등록금 동결로 우울하다. 교수들은 프로젝트 수주에 바쁘고, 재단은 발전기금 확충에 사활을 건다. 그래도 대학마다 돈이 없어 아우성이다.

여기에 유일한 젖줄이 정부 지원금이다. 등록금을 올리지 않는 데 대해 세금으로 보상하는 성격이지만 그냥 펑펑 나눠주지 않는다. 지표를 제시한 뒤 정량과 정성으로 나누어 엄격히 평가하니 여기에 대학의 행정력이 총동원된다. 처지면 밀리고, 탈락하면 벼랑이다. 대학이 이렇게 평가에 목숨을 걸다 보니 부작용이 속출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가치관의 왜곡이다. 지표에 불리한 것, 평판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가차 없이 쳐낸다. 이 과정에서 기초학문을 죽이는 반학문적 폭거가 일어난다. 이런 논리가 통용된다면 굳이 대학을 둘 명분이 없다. 기업부설 직업훈련원으로 족하다.

또 하나 짚을 것은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재벌의 대학 지배다. 경영의 효율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겠으나 지성의 고갈을 부채질하고 있는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들 대학 또한 대기업과의 연계를 노골적으로 광고하고 있고, 이런 전략에 대해 수험생과 학부모의 반응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또 다른 대기업이 대학을 인수하면 대박일까. 4년제 대학이 없는 LG나 SK, 현대차그룹이 특정 대학의 주인으로 들어가면 구성원들은 쌍수를 들어 환호작약해야 하나. 나는 아니라고 본다. 재정이 어려울 때 외부 도움을 받는 것과 재벌의 직접적 지배는 다르다. 지성을 자본에 복속시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외국의 명문들이 천문학적인 발전기금을 받고, CEO형 총장을 영입해도 대학을 통째로 기업에 넘긴 사례는 보지 못했다.

책임은 일차적으로 대학에 있다. 정체성을 잃은 채 헤픈 모습을 보였기에 기업이 집적거리지 않겠나. 대학이 그만큼 만만하고 얕잡아 보였기에 인수·합병하듯, 공장 하나 짓는 돈으로 대학을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저항한 일부 교직원들의 작은 몸짓은 울림도 없이 사그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대학과 기업은 역할이 아주 다르다. 국민들이 독재의 압제에 신음하고 있을 때 흐름을 바꾼 것은 대학의 용기 있는 지성이었다. 이에 비해 기업은 항거하지 않는다. 그게 속성이다. 기업이 체제 이데올로기 안에서 비즈니스에 충실하는 동안 대학은 그 체제 이후를 고민한다. 그런 기업이 대학을 이끌고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대학의 역할은 또 있다. 세계사가 큰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을 때 지성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시대의 낙오를 면치 못한다. 정치지도자들이 표 계산에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할 때 지식인이 전망대 역할을 못하면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런 것들이 기업이 생각하지 못하는 대학의 몫이다.

근래 대학이 역할에 충실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언제부턴가 지성의 고고한 목소리를 들어본 적 없다. 국민의 존경과 사회의 신망을 받지 못한 것이 대학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그렇다고 자본이 대학을 이처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정부도 뭉칫돈을 흔들며 이참에 대학을 길들이거나 줄 세우겠다는 생각을 접어야 건강한 미래가 열린다.

손수호(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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