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철 칼럼] 수능을 차라리 없애버리든지 기사의 사진
대입 재수생 C군은 지난해 11월 실시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특목고 이과생이던 그는 평소 수학에 흥미가 많았으며, 시중에 나온 수학 문제집을 모조리 풀어볼 정도로 열성이었다. 그 결과 고3 때 치러진 3월, 6월, 9월 모의평가시험에서 수학은 모두 만점을 받았고 주로 수학에서 승부가 갈리는 정시 준비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과생이 보는 수학 B형이 너무 쉽게 출제된 데다 C군은 어이없는 실수로 한 문제를 틀려버렸다. 만점자가 4.3%나 나오는 바람에 목표로 했던 SKY대 진학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C군은 꽤 상위권인 대학의 합격증을 받았으나 단념하고 학원에 등록해 재기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올해도 ‘물수능’ ‘로또수능’이 재현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노심초사하고 있다. 서울 강남을 비롯한 유명 재수학원에는 수능의 변별력 부재로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수능은 수학 B형뿐 아니라 영어도 만점자가 3.37%나 돼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일부 상위권 학생들은 수능을 실력보다 실수에 좌우되는 시험으로 인식할 정도다.

입시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수능의 난이도를 정교하게 조절해 변별력을 보장해 달라는데도 교육부는 마이동풍이다. 수능개선위원회는 지난주 ‘수능 난이도 안정화 방안’을 통해 “올해는 적절한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다양한 난이도의 문제를 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작년보다 다소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교육부는 사흘 후 보도자료를 내 “작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번복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뒷말이 나온다.

교육 당국이 변별력 상실에 따른 혼선을 경험하고도 이를 방치하겠다니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 교육부는 수능을 쉽게 출제하는 이유로 사교육 축소를 통한 공교육 정상화를 말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탁상공론일 뿐이다. 대학들은 수능에 대한 불신으로 학생부전형이 주종인 수시모집 비중을 매년 늘리고 있으며, 논술전형도 서울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이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신 성적과 비교과활동에 대비한 새로운 사교육이 번창하고, 논술학원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그렇다고 수능에 대비한 국·영·수 사교육이 줄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도대체 어쩔 작정인가. 20년 이상 유지돼온 수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거시적이고도 근본적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육부가 지금처럼 정치권 눈치나 보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건 직무유기다. ‘교육부 폐지론’이 괜히 나왔겠는가. 가장 효율적인 대책은 지금이라도 변별력을 갖춰 대학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다. 요즘 명문대 입학처장들이 고교 진학담당 교사들을 만나면 대놓고 ‘수능은 땡처리용’이라고 말한단다. 수능을 더 이상 제1의 선발 수단으로 삼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소리 아니겠는가. 당장이라도 변별력만 회복한다면 최고의 선발 수단이 될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

수능을 지금처럼 찬밥 취급할 바에야 아예 대입 자격고사로 전환하는 게 어떨까. 차라리 1970년대 ‘예비고사’ 시절로 돌아가 대학별 본고사를 부활하자는 얘기다. 수능에 대한 부담을 거의 없애버리고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100% 보장해주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본 60세 전후 연령대에서 이런 주장이 많이 나온다. 그렇게 하면 지금보다 학업과 사교육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것이 정착되면 수능을 폐지해도 무방한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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