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명호] 민심이 천심이라고? 기사의 사진
저녁 자리에서 가볍게 반주가 한 잔 돌아간 뒤 옆에 있던 부장판사가 내 쪽을 보며 할 말이 있단다. “무슨 큰 사고나 사건만 나면 왜 거의 모든 책임을 정부 탓으로 돌리지요? 여론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사법부에서 녹을 먹고 있는 사람이 웬 행정부 편? 글램핑장 화재, 영종대교 100중 추돌,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 같은 최근 사상자를 낸 참사에 대한 얘기가 오가고 있던 터였다. 그의 말인즉슨 이렇다. 물론 포괄적으로 책임질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정부만 책임지라는 일방적인 ‘단죄’는 결국 정부의 규제·단속 강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정부의 간섭이 많아지고, 공무원의 힘이 세진다. 비례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제한받거나 침해받을 여지도 점점 커진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사실 각종 사고 원인을 냉정히 따져보면 개인이 책임질 부분도 적지 않다. 사법부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과장된 여론, 선동이 슬며시 들어간 오도된 여론이 걱정스럽고 두렵기까지 하단다. 커뮤니케이션학 전공 교수가 역시 내 쪽을 쳐다보며 한수 거든다. “정치도 언론도 과장된 여론의 눈치를 봐야 하니 뭐….” 이어 돌아가면서 온갖 사례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용기.” 그 자리 몇 시간 전에 인터뷰차 만났던 김황식 전 총리의 간단명료한 답변이 떠올랐다. 갈등을 넘어 상대를 향한 증오마저 보이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정치인의 자질을 물어봤다.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나온 대답이었다. “여론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여야 없이 정치권을 휘감고 있는 인기영합주의, 여론 눈치보기가 도를 한참 넘어섰는데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복귀하려는 정치적 시도를 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중우(衆愚)정치로 흐른다는 걱정도 했다. 용기 있는 정치인이 멸종된 탓이다. 아니면 입 닫고 있는 걸까.

중우정치.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정치를 이르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은 다수의 폭민(暴民)에 의한 정치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수의 빈민(貧民)에 의한 정치로 규정했다. 한마디로 선동이나 군중심리에 기반한 비합리적인 여론에 휘둘리는 정치다. 주로 보수 세력들이 합리적 리더십이 결여된 민주제를 비아냥댈 때 사용하기도 한다.

“여론조사로 이완구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 여부를 가리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주장했을 때 중우정치가 새삼 머릿속을 후벼팠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때 벌어진 대한민국의 과공(過恭)이나, 이때다 싶어 떠들어댄 종북 타령도 그랬다. 감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여론에 기대어 이문 좀 남기겠다는 천박함은 이제 여야를 떠나 한국정치의 주요 기제로 자리 잡은 듯하다. 소수 목소리를 과대 포장해 이용하는 정치권의 행태는 전략으로 굳어졌다.

중우정치가 가능한 것은 결국 우중(愚衆)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는가. 즉응적이고, 냉철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한 단계 앞을 내다보질 않고. 이런 ‘어리석은 대중’이 중우정치의 토양이 되고, 노회한 정치꾼들은 표계산을 하며 적절히 중우정치를 지향한다. ‘민심은 천심’ ‘국민에게 물어보고’. 중우정치를 완벽한 민주제로 슬쩍 치환하는 명분이다. 여론은 가볍고 순간에 바뀌기도 한다.

“소련 입장에서 그들은 ‘쓸모 있는 바보들’의 역할을 할 것이다.” 공산혁명 과정에서 이용해먹을 수 있는 서방의 좌파 지식인들을 블라디미르 레닌은 이렇게 조롱했다. 우리 정치에서는 더욱 진화를 거듭해 비단 좌파 우파만의 문제가 아니다. 양쪽 진영에 즐비하게 늘어선 쓸모 있는 바보들이 중우정치를 더욱 부추긴다. 이젠 우중들이 각성할 때도 됐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선거가 있다.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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