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폭동인가?” 기사의 사진
‘우리 동네 폐지 줍는 할머니들이 한두 분이 아니다. 나라를 비방하거나 그 자식들 욕하기 싫다. 그냥 따뜻한 말 한마디 못 드리고 모른 체 지나가는 내 자신이 창피할 뿐이다.’

지난주 모바일 포털에 걸린 ‘고단한 노년, 500원 받으러 삼만리’ 기사의 댓글 중 하나다. 작성자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500원 받으러 삼만리’는 교회나 성당이 가난한 이들의 구제를 위해 500원씩을 나눠주는 일을 통해 빈곤 노인의 문제를 짚었다. 빈곤 노인들이 공짜 동전과 급식을 받기 위해 리스트를 작성해 돈다는 얘기다.

이 기사 댓글은 3000여개에 달했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등 복지 문제를 둘러싼 네티즌의 정치적 편향이 맞물려 성토가 주를 이뤘다. 교회의 선행 기사임에도 댓글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분노, 절망, 탄식, 체념, 연민, 회피, 전가, 촉구, 강요, 반성 등 감정의 용광로였다.

대가 없이 도와주는 교회

댓글이 여론 전체는 아닐지나 그러한 댓글이 이슈를 만들고 이끌어 가는 것 또한 현실이어서 가벼이 여길 수도 없다. 그럼에도 진심은 시간이 더디 걸릴 뿐 전달되기 마련이다.

‘맨날 맨날 개독개독 하지만 어려운 사람들 아무 대가 없이 도와주는 곳은 성당, 교회밖에 없다. 잘하는 건 칭찬해주는 게 맞다.’

‘개독 하면서 욕해도 실상은 기독교가 나라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거 잊지 마라. 매주 수많은 노인에게 식사와 500원을 제공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 교육과 복지는 기독교가 맡아왔다. 특히 복지는 오늘날까지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감당해 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출범한 것이 1994년이다. 한국전쟁 직후 보건사회부란 이름으로 ‘구호’하기도 버거웠던 가난한 대한민국이었다. 버려지고 굶어 죽는 이들은 교회가 나서 챙겼다.

‘안타까운 기사지만 우리 교회는 일요일 무료 급식한다. 100여명 드실 것 준비해도 30명 식사하면 동난다. 비닐 가져와 챙겨가는 분들, 반찬 가져가시는 분들… 떼쓰시는데 안 드릴 수도 없고. 없을수록 다른 노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 대부분의 교회가 이러한 수고를 감당한다.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 빈곤층 노인을 보살피고, 내규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미혼모쉼터에서 쫓겨난 외국인노동자 미혼모까지도 껴안는 곳이 교회다. ‘사고’ 치는 교회, 목회자는 사단의 영이 드리운 자이거나 교회 우산 아래 스며든 악한 영들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 못할 부분이겠지만.

교회 관련 기사들이 네티즌의 먹잇감이 된 지 오래다. 미디어에 의해 던져지면 콘도르에게 뜯기는 짐승처럼 만신창이가 된다. 그런데도 교회는 무감각하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루이 16세가 “와” 하는 함성 소리를 듣고 시종에게 “폭동인가”하고 물었더니 “아닙니다. 혁명입니다”라는 대답을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오늘의 교회는 이 온도 차를 모른다.

“아닙니다. 혁명입니다.”

1970∼80년대 한국 사회 빛과 소금이었던 교회는 2000년대 들어 탐욕을 부리면서 젊은 층의 외면을 받고 있다. 청년들이 왜 외면하는지 관심도 없는 듯하다.

인천 가좌제일교회는 비전나눔센터, 수원종로교회는 노숙자급식관 시은관을 운영한다. 두 교회는 본당이 좁아 주일 예배를 나눠 드리는데도 이들 건물을 먼저 지었다. 서울 중앙성결교회는 비크리스천 이웃의 수도·전기 등 미납 공과금을 내주곤 한다. 이들 교회엔 여느 교회보다 청년부가 활발하다. 이유가 있다. 신앙의 선배들이 행하는 일을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참, 루이 16세는 성직자와 귀족이 독차지 하고 있는 의회에 평민을 참여시켰다. 그만큼 순한 사람이었다. 악은 루이 14, 루이 15세가 행했다. 그런데도 그는 모든 죄를 뒤집어썼다. 왕이라는 이유로. 기로의 한국 교회다.

전정희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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