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김 前 총리가 본 ‘독일 정치’ 기사의 사진
김황식 전 총리
김황식 전 총리는 독일 정치에서 배울 게 적지 않다고 했다. 대화·절충·타협을 통한 통합과 정치 지도자의 용기가 배울 점의 요체다.

국민에 끌려가지 않고 국민을 끌고 간다

정치 지도자는 때론 여론과 다른 방향을 선택했기에 위대하다. 2차대전 후 스탈린이 통독시켜 중립국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대단히 매력적이어서 국민 다수가 찬성했다. 하지만 콘라드 아데나워 총리는 그럴 경우 결국 독일이 소련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신념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가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론에 반하는 정책을 썼고 오늘의 독일 체제가 있게끔 했다.

동서냉전 이후 포츠담 회담으로 빼앗긴 옛 영토 폴란드(독일 영토의 4분의 1)를 되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국민들에게 환영받을 고토(古土) 회복 정책을 빌리 브란트 총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 시도를 하면 독일 통일은 물론 유럽 평화까지 불가능해진다고 판단했다. 국민들은 싫어했지만 되찾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국내 여론과 강대국들을 꾸준히 설득, 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지지층을 잃는다는 것을 알면서 노동개혁과 연금개혁 정책인 ‘어젠다 2010’을 밀어붙였다. 국민에게 끌려가는 게 아니라 끌고 가는 정책을 펼쳤다. 결국 이 정책으로 총리에서 물러났지만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의 기관차’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초석을 깔았다. 통일 총리이었던 헬무트 콜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통일 과정을 소화한 배경에는 정파가 다른 브란트가 정치적 멘토 역할을 했었기 때문이다. 이게 성공하는 정치 모습, 성공한 정치인이 아니겠는가. 국민과 정치, 정파와의 관계가 이런 것 아닌가. 정말 가슴에 와 닿는 감동을 느꼈다. 우리도 이런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치의 독재는 상당 부분 국민의 암묵적 지지 속에서 합법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국민이 깨어있어야 함을 절감했다. 그래서 1950년에 연방정치교육훈련원을 만들어 정치의식을 높이는 교육을 했다. 국민의 정치의식이 높아지면 정치가 엉뚱한 짓을 못한다.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이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시민단체나 학교 공교육 등을 통해 정치 지망생들은 단계적인 훈련을 받는다.

독일 정치는 일당이 절대 독식할 수 없는 구조다. 연정이 장관 몇 자리 나누는 게 아니다. 연정 파트너끼리 의견이 다른 쟁점을 2개월여 논의해 수백쪽짜리 연정협약서라는 것을 만든다. 공약 조정인 동시에 과정 자체가 절충·타협이다. 단일 정당처럼 되는 것이다.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80% 지지 연합정당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통합이 되고 정치가 안정될 수 있다. 다음 선거에서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대개 어느 한 정당은 집권 연정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부분 조정은 있을지라도 자연스럽게 많은 정책이 이어진다. 우리처럼 싹 쓸어버리지는 않는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연정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솔직히 부럽다.

김황식 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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