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아데코’ 이사장 김황식 前 총리 “정치인, 포퓰리즘 떠나 국익만 생각하는 용기 필요” 기사의 사진
김황식 전 총리는 정치인이 인기영합주의로 나가기 시작하면 중우(衆愚)정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정치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통합 기능이며, 타협·절충·협상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영희 기자
신중함과 조심스러운 어휘 선택은 여전했지만 할 말은 참 많은 듯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통합 문제, 그런 것에 대한 정치의 역할에 대해 특히 그랬다. 김황식 전 총리는 지난해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경선에서 ‘쓴맛’을 보고 난 뒤 정치를 “참 별다른 세계”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정치의 제도적 문제점, 용기가 부족한 정치인들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봤다. 정치 전반에 퍼지고 있는 포퓰리즘도 걱정했다.

판사 시절과 총리 퇴임 후 독일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독일의 정치 시스템과 통일 과정, 용기 있는 정치 리더십에 천착하고 있는 그는 현재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7월) 공동조직위원장과 한·독의 기업인·학자·외교관들의 네트워크인 사단법인 아데코(ADeKo) 이사장을 맡고 있다. 최근 낸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났다.

-계층·세대·노사 갈등이 어느 때보다 깊다. 갈등을 넘어 상대를 향한 분노와 증오라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일제, 광복, 분단, 전쟁, 이념갈등이 있었고 압축성장 과정에서 편법, 탈법이 난무했다. 이런 과정에서 합리적 조정을 위한 정치적 능력도 없었고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리더십도 부족했다. 오히려 지역감정을 이용한 세력의 구축이랄까 정치가 갈등을 증폭시켰고, 세대갈등, 양극화 현상까지 생겼다. 해결하는데 사회 전체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가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통합 기능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부족한 것 아닌가. 정치의 어떤 면이 떨어지나.

“지도층 역할은 그 사회가 도덕적·윤리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쓴 것처럼 서구 민주사회에서는 기독교 정신이 바탕이 돼 그런 역할을 해주었다. 이웃사랑과 배려 같은 것이다. 우리가 너무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내가 살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과당 경쟁이 사회 전반에 자리했다. 지도층이 배려나 헌신을 보여줘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시켜야 했는데 그런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정치도 너무 양극화가 됐다. 타협·설득하는 중간 세력이 없다. 독일정치에서 절실히 느낀 게 있다. 다당제로 정치 시스템을 운영하는 독일은 중간자적 역할의 정당이 있고, 연립정부 구성으로 대화·타협·절충하며 정치 시스템을 운영한다.”

-타협하면 소신 꺾은 배신자, ‘사쿠라’로 비판받는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국민 개개인도 내 견해가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대화와 타협을 해서 양보하고 후일을 도모하고 여유도 갖는데, 너무 극단적이다. 생각을 바꾸자고 말하고 싶다.”

-선거 제도가 바뀌어야 하나.

“우리의 문제점은 국민 의사가 100%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 의사와 의석 분포가 불일치한다. 소선거구제로는 해결할 수 없다. 중선거구제나 석패율제, 정당득표에 따른 의석 배분 등을 검토하면 이 같은 문제점들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갈등의 중심에는 복지 현안이 있다. 정치에서 포퓰리즘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서구와 달리 복지 역사가 짧아서 그렇다. 복지재원 마련과 복지 수준에는 함수관계가 있는데, 선거 과정에서 연결고리가 끊어져 지금의 혼란이 생겼다. 복지 늘리는 쪽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데 재원이 일부 왜곡 분배됨으로써 사회 다른 곳에 문제가 생긴다면 복지 우선순위를 조절해야 한다. 선거 과정에서 이런 고민이 도외시됐다. 정치권과 국민이 고민해야 한다.”

-복지 조정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렇다. 경제적 여유 있는 사람들이 양보하고 여기서 나오는 재원이 진짜 어려운 사람들에게 쓰이면 사회 통합에도 기여할 것이다. 통계를 보면 국민들도 많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치권이 잘 수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 정치나 정치 지도자들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큰 문제는 당리당략, 포퓰리즘, 중우(衆愚)정치, 이런 것들이다. 공자 말씀이지만 당리당략이나 개인·정파 이익보다는 국익과 국가 장래가 우선이다.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좌파 총리였지만 경제 회복을 위해 우파 정책인 ‘어젠다 2010’을 채택했다. 그리고 선거에서 졌다. 내가 슈뢰더를 만나 물어보니 이런 말을 하더라. ‘정치는 어렵다. 정책 성과가 후에 나타나기 때문에 선거에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럼에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으로서 굉장히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이다.”

-정치인의 용기를 말하는 건가.

“바로 그렇다. 당선보다는 국가 이익과 장래를 먼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선거 패배를 감내할 수 있는 용기, 포퓰리즘적 상황에서 그게 아니라고 분연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 경우에 따라서는 여론이 반드시 선(善)은 아니니까. 그래서 중우정치가 나온다. 정치인은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개헌 검토 필요하다고 했는데 내각제론자인가.

“지금 대통령제는 1987년 이후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개선돼야 한다. 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어느 한쪽을 자신 있게 말은 하지 않겠다. 여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권력구조가 합리적으로 되고, 대화·타협·절충하는 정치문화가 형성되는 게 중요하다. 극단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감사원장·총리로 사정 업무를 총괄했었다. 4대 부문 사정이 진행 중인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일상적으로 진행되면서 하나하나 들춰내서 척결하는 게 좋다. 혹시 오해한다든지 방법이 서툴러서 기업이나 경제를 위축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 그래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의 것(사정)은 언론이나 국민이 엉뚱하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잘못된 일이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해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잘못된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김영란법은 어떻게 보는가.

“공무원연금 개혁은 당위성도 있고 결론도 나 있다. 정부에 있을 때 갈등 과제 많았는데, 갈등은 발생하는 순간 대부분 어느 방향으로 갈지 결론이 나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충실한 논의와 절차를 거쳐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김영란법 취지는 좋다. 하지만 현실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어느 단계부터 어느 범위부터 어떤 수순으로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안됐다. 논의 때는 많은 국회의원이 볼멘소리도 하고 부당하다고 했는데 정작 투표에는 몇 사람 제외하고 거의 찬성했다. 비겁한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위한 논의를 해야지, 날짜 정해놓고 작전하듯 했다. 그러니 문제가 더 커진 것 아닌가.”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체육·민간 교류 차원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만한 행사를 할 계획은.

“70여개국 2만여명이 참여하는 광주·전남에서의 최대 국제 행사다. 북한도 기존 규모보다 두 배 많은 108명을 보낸다. 우선 응원단 파견과 성화 채화 및 봉송에 북한이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남북 단일팀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승패와 관계없는 일부 종목에서는 단일팀 구성을 생각해보겠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