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노희경] 정직한 중보기도를 부탁합니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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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 덕분에 친해진 진우 엄마는 작년 봄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7차례 항암치료와 올 초엔 수술도 했다. 그에게 “걱정 말고 힘내. 기도할게”란 말로 가끔 문자를 보냈다. 한 달 전쯤, 그를 만났다. 얼굴색이 달랐다. 한층 밝은 목소리로 “동훈 엄마 기도 덕분에 좋아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진우 엄마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기도하겠다’고 분명 내 입으로 약속해놓고, 그렇게 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아픔이나 상처, 시련 등을 만나면 서로 기도를 부탁한다. ‘기도해주겠다’고도 한다. 바로 ‘중보기도’, 남을 위한 기도다. 기도로써 함께한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의 힘이 되어준다는 건 큰 축복이다. 그만큼 기도의 중요성, 기도의 힘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엔 이 ‘기도 약속’을 너무 쉽게 하는 것 같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5∼6)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는 이 말씀을 인용하며 ‘기도의 두 가지 구도’에 대해 설교했다. 기도하는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모습이라도 두 종류로 나뉜다는 것이다. 하나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는 진우 엄마에게 보이려고 쉽게 기도 약속을 해버린 것이다. 부끄럽게도 정직하지 못했다.

그래서 최근 페이스북에 딸의 투병일기를 올리며 ‘정직한 중보기도 운동’을 일으킨 예배인도자 장종택 전도사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갔는지 모른다. 딸 온유는 호흡곤란에 의식을 잃고 지난 1월 2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아버지는 그날부터 페북에 매일 온유 소식을 올렸다. ‘정직한 중보기도, 신실한 기도를 부탁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왜 그는 중보기도 앞에 ‘정직’ ‘신실’이라는 단어를 붙였을까. 1월 27일에 올린 글 속에 이유가 나와 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사전 연락 없이 와주셔서 기도의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온유 상태는 진전된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잘 싸우고 있습니다. 중보기도가 단지 기독교인의 의미 없는 인사 정도로 가치가 떨어져 있다 생각했는데, 지금 상황은 그게 아닙니다. 보내오는 문자와 페북의 댓글에 깊은 기도가 묻어 있더군요. 절박하고 정직한 기도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더군요.”

그는 ‘입’으로만 기도하겠다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딸이 종양 제거 수술을 하고, 혈장 분리술을 받을 때, 심한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긴급 중보기도를 올렸다. 오로지 ‘정직한 기도’만을 구했다. 어느새 페북 친구들은 100건 넘는 댓글을 달고, 1000건 가까이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을 표했다. 그들 중엔 나도 있었다.

한번 만난 적 없는 온유를 위해 페북 친구들이 금식하며 중보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몸은 피곤하고, 재정적 부담은 커지고, 아이 상태는 나아지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예수님의 은혜를 전했다. 함께해준 기도 동역자들에게 감사를 고백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감동은 자연스레 우리 가운데 스며들었다. 그렇게 은혜의 마음이 생겼다.

온유는 입원한 지 두 달 만인 지난달 20일 깨어났고, 부활절을 며칠 앞둔 지난 31일 퇴원했다. 정직하고 순결한 중보기도가 온유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두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분명 예수님이 계셨다(마 18:20).

‘주님은 나의 최고봉’의 저자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시고, 성령께서 성도를 위해 중보기도하신다. 당신은 성령님께 교육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동료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는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가?”

정직한 중보기도가 필요한 때다. 곳곳에 남아 있는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건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몫이다. 침체에 빠진 한국교회도 정직한 기도로 다시 깨울 수 있다. 자신을 위해, 물질적 풍요를 간구했던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와 의의 확장을 위해 거룩한 기도를 드려보자. 우리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음을 경험하게 해주신 부활의 주님을 다시 한 번 찬양한다.

노희경 종교기획부 차장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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