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 우리에게 무엇인가] 과거의 잘못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원칙 기사의 사진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전 콜더홀이 폐쇄되기 이전인 1990년대 후반 셀라필드 모습. 셀라필드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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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맨체스터 공항에서 북서쪽으로 150㎞, 승용차로 2시간30분 걸리는 그레이트브리튼섬 서쪽 해안가 웨스트컴브리아.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원자력발전 단지 셀라필드가 있다.

◇미래로 가는 험난한 길=셀라필드 해체에 투입되는 비용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발전 단지인 만큼 우리나라를 포함해 원전을 운용하는 각국의 미래 모습과 직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국 감사원(NAO)은 지난 2월 ‘셀라필드의 진전 상황에 대한 업데이트’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해체조직국(NDA)은 정화 작업을 포함해 셀라필드를 완전 해체하는 데 들어가는 예산을 530억 파운드(86조원)로 계산했다고 밝혔다. 전년도 집계치와 비교해 50억 파운드가 증가한 수치다.

셀라필드 해체에 들어가는 비용이 계속 불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용 부담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NDA는 비용이 증가하는 데 대한 해명을 하기에 바쁘다. NDA는 성명을 내고 “셀라필드는 1940년대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시설”이라며 “이 특별한 시설에 대한 기술적 접근방법을 더 잘 이해하게 됐기 때문에 비용이 늘어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셀라필드는 초창기 핵무기 프로그램이 가동됐던 1900년대 중반 군사적 용도를 주목적으로 건설된 시설이었고, 추후 상업용 발전을 병행하도록 개조됐다. 일반적인 원전의 해체와 단순 비교는 힘들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영국 화이트하벤 소재 셀라필드 기념관에서 만난 셀라필드사 관계자는 “셀라필드에는 1950년대부터 쌓여온 방사성 폐기물이 콘크리트로 밀봉된 상태로 보관돼 있다”며 “현재는 옛 기술로 처리된 이 잔존물들을 어떻게 정화해야 할지 연구하는 과정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셀라필드 정화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정확하게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일반 상업용 원전 해체에 들어가는 정화 비용보다는 높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셀라필드 해체는 원전 단지 건립을 계기로 성장한 지역사회에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원전 해체로 고용과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셀라필드사 관계자는 “셀라필드는 지역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원전 단지에 직접적으로 고용돼 노동력을 제공하는 인력은 1만명 정도로 이 가운데 90% 이상이 주변 웨스트컴브리아 주민들이다. 원전 단지 자체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공장 중 하나로 상당한 규모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주민들뿐 아니라 영국 정부조차 향후 셀라필드가 문을 닫은 뒤 급증하게 될 지역 실업자 문제를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부끄러운 역사도 투명하게 공개”=셀라필드는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전인 콜더홀이 세워진 곳으로 유명하다. 당초 셀라필드의 소유권은 영국 핵연료공사(BNFL)가 갖고 있었지만 NDA 소속으로 넘어갔고, 현재 운영은 민간 업체인 셀라필드사가 맡고 있다. 최근에는 원전 해체 작업과 영국 내 핵연료 재처리 작업이 주력 사업이다.

셀라필드의 시작은 군수품 공장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영국에 대한 핵기술 지원을 중단했다. 이에 영국 군수성은 티엔티(TNT) 폭약을 제조하던 이곳 부지의 명칭을 윈드스케일(셀라필드의 옛 이름)로 명명하고 1947년 1월 핵물질을 생산하는 공장 착공에 들어갔다.

1950년 6월 윈드스케일 원자로에 핵연료가 투입됐다. 2년 뒤에는 재처리 공장도 가동되면서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과 우라늄이 추출되기 시작했다. 분리된 플루토늄은 무기 제조에, 우라늄은 발전에 사용됐다.

초기 윈드스케일 원자로는 흑연 노심을 공기를 통해 냉각시키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런데 1957년 10월 흑연이 과열돼 노심이 갑자기 불타올랐고, 핵분열 시 발생하는 아이오딘-131을 비롯해 2만 퀴리 규모의 방사선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윈드스케일 화재 사고는 영국뿐 아니라 세계 원전 역사에서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원전 안전의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셀라필드 기념관 초입부에는 당시 분위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록들이 전시돼 있었다. 오염된 우유를 버리는 사진, 겁에 질린 주민들 인터뷰, 대서특필된 언론보도 등의 자료들이다. 셀라필드사 관계자는 “과거의 잘못도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게 우리의 원칙”이라며 “윈드스케일 사고는 사실상 셀라필드 역사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1호 상업용 원전’의 그림자=1953년 영국은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전인 콜더홀의 착공에 들어갔다. 1956년 8월 처음 전력선이 연결됐고,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1956년 10월 공식적으로 전 세계에 콜더홀 준공을 선포했다.

이후 세계 각국은 앞 다퉈 원전 건설에 뛰어들었다. 원자력을 통한 발전이 기존 화력발전에 비해 훨씬 경제적일 것으로 계산됐기 때문이다.

콜더홀은 전기와 플루토늄을 동시에 생산하는 원전이었다. 군사적 목적으로 운영되면서 전기를 생산하는 상업적 용도로도 쓰였다는 의미다. 실제 초창기 콜더홀의 주목적은 무기급 플루토늄 제작에 있었고 전력 생산은 후순위였다. 1964년부터 전력 생산에 집중하게 됐지만 1995년 영국 정부가 무기에 쓸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기 전까지 콜더홀은 꾸준히 플루토늄을 생산했다.

◇변모한 셀라필드=어두웠던 역사를 뒤로 하고 1990년대부터 셀라필드는 변모하기 시작했다. 1990년 마그녹스 캡슐화 공장(MEP)이 가동됐다. 마그녹스는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섞어 대부분의 원자로에 장전하는 농축우라늄 연료와 유사하게 만든 연료로 경수로에 사용하는 저농축 연료의 대안이 될 수 있었다. 넘쳐나던 무기급 플루토늄을 전력용으로 돌릴 수 있었다는 의미다.

1994년에는 핵폐기물 내 방사성 물질을 반응제로 제거하는 공장(EARP)이 문을 열었다. 2004년부터는 셀라필드에서 생성된 방사성 물질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 뿌려진 테크네튬-99를 줄이는 역할도 수행했다.

47년 동안 가동된 콜더홀은 2003년 3월 폐쇄됐고, 4개의 원전 냉각탑은 2007년 11월 폭파해체 공법으로 모두 제거됐다.

런던=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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